금융사기가 의심되는 문자 한 통을 앱에 복사해 붙여넣으면, 바로 “위험 높음”이라는 경고가 뜬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3사가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스미싱 범죄에 맞서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들은 각각 대규모언어모델(LLM) 등을 통해 자체 개발한 AI 판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케이뱅크다.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 중 처음으로 금융특화 프라이빗 LLM을 도입해 ‘스미싱 문자 AI 판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가 의심 문자를 앱에 붙여넣으면 △‘재택 아르바이트 사칭’, △‘택배 확인 위장’ 등 구체적인 판독 근거를 위험도와 함께 제시한다. 특히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스미싱 유형을 AI가 가상으로 미리 만들어 학습해두는 방식으로 선제 대응력을 높인 것이 이 서비스의 특징이다.
케이뱅크는 2025년 2월 신설한 ‘안심연구소’를 중심으로 케이티(KT)와 협업한 △AI 보이스피싱 탐지 정보 도입, △명의도용 전액보상, △악성 앱 탐지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였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금융감독원의 ‘2025년 보이스피싱 유공자 기관’ 포상을 받았다.
카카오뱅크는 자체 학습 LLM과 자연어처리 모델(BERT)을 결합한 ‘AI 스미싱 문자 확인’ 서비스로 금융사기에 대응하고 있다. 의심 문자를 복사해 붙여넣으면, △위험 높음 △안전 △단순 스팸 △판단 불가 등 4단계로 즉시 분류해주는 방식이다.
카카오뱅크가 올해 상반기(1~6월) 접수된 스미싱 의심 문자 1만24건을 자체 분석한 결과, 결제·입금 등 금융거래를 사칭한 유형이 33%로 가장 많았다. 인증·개인정보 확인(28%), 공공기관 안내(13%), 택배·배송(11%), 지인·경조사(5%)가 뒤를 이었다.
특히, 실제 거래처럼 위장해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수법이 늘고 있다는 게 카카오뱅크의 분석이다. 카카오뱅크는 신분증 인식·안면 인증 등 자체 금융인증 기술과 △명의도용 방지, △지연이체, △입금계좌 지정 서비스도 함께 운영 중이다.
토스뱅크는 기술적 탐지와 함께, ‘사람’을 활용한 지역사회 예방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과 함께 추진하는 ‘우리동네 금융사기예방관’이 대표적이다. 이는 평균 30년 이상 경찰 경력을 가진 퇴직 경찰관들이 예방관으로 활동해 주민 대상 예방 교육·상담·순찰을 수행하는 민관 협력 모델이다. 지난 5월 1기 발대식을 마쳤고, 최근 발대식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참여형 캠페인도 진행했다. 토스뱅크는 이와 병행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개별 은행 차원의 대응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은 인터넷은행 3사가 금융보안원과 함께 만든 ‘보이스피싱 탐지 AI 공동모델’이다. 이들은 각 은행의 현장 경험을 더해 설계한 탐지 노하우를 하나로 묶은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연합학습이란 각 기관이 보유한 원본 학습 데이터는 외부에 공유하지 않고, 기관별로 학습된 AI 모델의 가중치만 공유·병합하는 기술이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은행 밖으로 유출하지 않으면서도, 3사의 방어력을 결집시키도록 했다. 개인정보·보안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기관의 탐지 노하우를 결합시켜, 개별 은행 차원의 탐지 정밀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된다. 이달부터 각 인터넷은행의 자체 AI 모델 및 FDS와 병행 운영에 들어갔다.
검증 과정에서는 정상 계좌로 위장한 대포통장은 물론, 미성년·청년층을 노린 소액 보이스피싱 피해 계좌까지 탐지한 사례가 확인됐다. 탐지 정밀도는 개별 모델 대비 최대 약 205%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술적 성과는 국제 학회에도 잇따라 채택됐다.
금융보안원은 공동모델 적용을 연내 시중은행·카드사 등으로 넓힐 계획이다. 4분기에는 전기통신금융사기 정보공유·분석 플랫폼(ASAP)에도 탑재해 자체 AI 역량이 부족한 중소형 금융사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스미싱·보이스피싱 범죄가 딥보이스, 악성 앱, 분할 송금 등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어 개별 금융사의 단편적 탐지 체계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은행권 전반의 흐름도 과거 침해사고 방지·규제 준수 중심에서, AI 기반 공격과 공급망 침투, 내부자 리스크까지 아우르는 경영 리스크 관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5대 은행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들 또한 △보안관제 지능화, △FDS 고도화, △접근권한 통제, △공급망 보안, △이사회 보고체계 강화를 AI 시대 금융보안의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
한 인터넷은행 고위 관계자는 “범죄자들이 이미 생성형 AI를 공격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이제 은행의 보안 경쟁력은 기술적 방어력과 고객 중심 예방 서비스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