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구조적 피로’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블록체인 기술인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 조셉 루빈(Joseph Lubin)의 기고를 게재, “현재 금융시스템은 ▲국경 간 결제의 비효율, ▲통화 가치의 불안정,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하락 등 ‘구조적 피로(Architectural Fatigue)’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술이 이미 블랙록, 제이피모건 등 월가 주요 기관들의 자산 토큰화·결제 시스템에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루빈은 이 기고에서 “인터넷이 정보 흐름을 혁신한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기반이 될 것”이라며 “분산화 시스템은, 신뢰를 ‘기관’으로부터 ‘인프라’로 옮기는 철학적 전환”이라고 주장했다.
루빈에 따르면, 현대 금융시스템은 근본적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겪고 있다. 수십년간의 세계화와 점점 더 취약해지는 제도들은 ▲인플레이션 충격, ▲과도한 부채, ▲중앙집중적 권위에 대한 신뢰 하락 등에 따른 변동성의 시대로 이어졌다는 것.
게다가, ▲국경 간 결제는 여전히 비효율적이며, ▲주권 통화는 점점 더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다. 그동안 금융에 대한 신뢰는 중앙은행, 그리고 법적 체계에 의해 유지돼 왔다. 하지만, 분열된 세계에서 이 신뢰는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피로의 신호라고 루빈은 주장했다. 필요한 것은 재구조화.
1990년대에 글로벌 정보 시스템은 자체적인 구조적 재설정을 겪었다. ‘초본문전송규약(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 같은 새로운 프로토콜을 통해서였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개방형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을 제공했다.
금융시스템은 아직 이런 혁명을 경험하지 않았다. 이더리움과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이 이를 촉진할 수 있다고 루빈은 강조했다. 인터넷이 정보를 이동시키는 방식과 유사하게,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가치를 쉽게 전송할 수 있기 때문. 디지털 자산의 저장, 전송, 조작이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가능해졌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만큼 쉽다.
스마트 계약의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포함한 새로운 유형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전통적 중개자 없이도 가상화폐, 아이디 증명, 계약 합의 등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의 이동과 관리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개별 기업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암호화를 통해 거래의 진위를 합의하는 분산형 네트워크에 의해 운영된다. 거래 기록은,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보장된다.
이미 블랙록,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프랭클린 템플턴, 제이피모건 같은 다양한 기관들이 블록체인에서 자산 토큰화, 그리고 정산 프로세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술은 현재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더 이상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블록체인 인프라를 사용하는 초기 채택자들은 글로벌 처리량과 사용성을 지원하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루빈은 지적했다. 업그레이드는 복잡하지만, 이더리움은 거의 10년 전 시작된 이후로 12번 이상의 주요 업그레이드를 수행해 왔다. 일시 멈춤이나 체인위에 담은 자산의 손실은 없었다. 여전히 진화 중이지만 기술적으로 탄력성이 입증돼, 기관들에게 점점 더 신뢰를 얻고 있다.
기술적 설계 외에, 더 넓은 철학적 변화도 주목할 만 하다. 분산형 시스템은 신뢰를 기관으로부터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인프라에 내재될 수 있는 것으로 재정의한다.
따라서 신뢰는 새로운 종류의 상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분산형 신뢰’는 그 상품의 최고 등급, 즉 금본위제와 같은 기준이 된다고 루빈은 주장했다. 글로벌 협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치적 합의가 취약해지는 세상에서, 설계상 상대방 위험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블록체인 기술은 국가 통화를 대체하거나 은행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고 루빈은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기존 시스템과 공존할 수 있는 상호운용 가능한 금융 인프라의 층을 생성해, ▲금융시스템에 대한 마찰 감소, ▲접근성 확대, ▲회복력 강화를 위한 길을 제공하는 주장이라는 것.
사용 사례는 자본 시장을 넘어 확장된다고 루빈은 예상했다. 디지털 아이디, 지적 재산권, 신흥 경제국의 결제 인프라, 심지어 자율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간의 기계 대 기계(M2M) 거래 등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 인프라는 국가 경계를 넘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의 많은 부분이 인터넷 없이는 가능하지 않듯이, 미래 경제의 많은 부분도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 네트워크 없이는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일부 인식은 ▲투기적 과열, ▲가격 변동성, ▲고위층의 실패로 인해 손상됐다고 루빈은 인정했다. 하지만 투기적 자산과 그 뒤에 있는 인프라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기본 프로토콜은 설계의 품질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
우리는 경쟁적인 거버넌스와 중첩된 규제 체계를 가진 다극화된 세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중립적이고 프로그래밍 가능한 인프라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루빈은 설명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