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는 올해에만 4000억달러(약 556조400억원)에 달한다. 2028년 말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액은 3조 달러(약 4174조 50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 붐은 범용 인공지능(AGI)을 향한 기대와 끊임없는 투자 경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거나 △AI의 상용화가 더디게 진행될 경우, ‘AI 한파’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제기했다.
이렇게 되면, 빠르게 쓸모없어지는 서버와 칩에 집중되는 AI 투자는 지속적인 유산을 남기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AGI가 성공하더라도 승자 독식구조 강화로 많은 투자자는 손실을 보게된다. 그 파장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AI는 현대사에서 가장 큰 투자 붐 중 하나다. 올해 미국의 대형 기술 기업들은 AI 모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에 거의 40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AI 모델 개발사인 오픈에이아이와 앤트로픽은 몇 달마다 수십억 달러(수 조원)씩을 모금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총 가치는 5000억 달러(약 694조 95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2028년 말까지 데이터센터에 전 세계적으로 투자되는 금액이 3조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예상한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의 규모를 고려할 때, 투자회수 시점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기술이 성공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 만약 기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경제적, 재정적 고통은 신속하고 심각하게 찾아올 것이다.
투자자들은 항상 유망한 기술로 몰려들지만, AI 열풍은 과거의 많은 붐보다 더 극심하다. AGI는 불과 몇 년 안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AGI는 인간의 인지 작업 대부분을 평균 이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최초로 달성하는 기업은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자자와 혁신가들은, 조심스럽고 느리게 투자하는 것을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생각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이들도 대박이 날 바로 그 모델에 투자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결과적으로, 대형 기술 기업들은 가장 큰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파워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끊임없는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부터 전력 회사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외부 참여자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오라클이 가장 최근에 이 대열에 합류했다. 오라클은 9월 10일 AI 관련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야심 찬 전망을 발표한 후 가치가 급등했다. 이로 인해 래리 엘리슨 회장은 잠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많은 투자자는 돈을 잃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AGI가 등장해 연간 20%의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 일부 주주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투자자는 큰 손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더 평범한 시나리오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했다. 기술은 투자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미국에서 교류(AC)가 결국 우세해졌을 때, 직류(DC) 전력 회사는 빛을 잃고 통합을 강요당했다.
오늘날 투자자들은 AI의 승자가 가장 큰 모델을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기 사용자들은 더 작은 언어 모델(Language Model)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는 결국 더 작은 컴퓨팅 용량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혹은 광범위한 채택으로 가는 길이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느리고 험난할 수도 있다. 이는 오늘날 AI 후발 주자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AI 채택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사소한 기술적 결함, △전력 신속 공급의 어려움, 또는 △경영진의 관성 때문이다. AI 수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많은 투자자와 채권자들은 막대한 투자를 용납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자본 흐름이 둔화할 수 있다. 손실의 무게에 허덕이는 일부 스타트업은 완전히 문을 닫을 수도 있다.
‘AI 한파’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오늘날의 많은 지출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19세기 철도 광풍 이후 영국에는 철로, 터널, 교량이 남았다. 이 중 상당수는 오늘날에도 승객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닷컴 버블 시대에 구축된 광섬유 네트워크를 통해 비트와 바이트는 여전히 빠르게 이동한다.
그러나 AI 붐은 지속적인 유산을 덜 남길 수 있다. 자본 지출의 절반 이상이 몇 년 안에 쓸모없어지는 서버와 특수 칩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건물과 새로운 전력 용량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기는 하다.
좋은 소식은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일부 기술 버블의 붕괴는 잔혹했다. 1860년대 영국 철도 버블이 터진 후 은행들은 큰 손실을 봤다. 이는 신용 경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데이터센터에 대한 많은 투자는 대형 기술 기업의 큰 이윤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메타를 포함한 기업들은 최신 투자를 위해 부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수익성 있는 사업과 탄탄한 재무제표는, 그들이 기술 붐을 위한 자금 조달에 있어 좋은 위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용을 제공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것은 일반 예금자가 아니다. 부유한 개인과 기관이 자금을 조달하는 사모시장 펀드다. AI 스타트업은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을 가진 벤처 펀드와 국부 펀드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나타날 수 있다. 투자 붐이 확산할수록 금융 구조는 더 위험해지고, 더 많은 부채를 진 기업들이 끌려들 수 있다. 전력 회사들은 AI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려 한다. 부채가 많은 공공시설은 과도한 투자를 쉽게 할 수 있다.
미국 경제 또한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AI 붐은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40%를 기여했다. 전체 생산의 몇 퍼센트에 불과한 부문이 성장에 이렇게 크게 기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만약 투자 프로젝트가 축소되거나 중단되면 데이터센터 건설이 줄고 관련 일자리도 감소한다.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우려했다.
설상가상으로, 주가 하락은 자산가들의 지출 축소를 유발할 수 있다. AI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현재 포트폴리오는 소수의 대형 기술주에 편중돼 있다.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도 2000년보다 높아, 주가 하락 시 소비심리와 지출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빈곤층은 주식 보유가 적어 타격을 덜 받겠지만, 지난 1년간 미국의 소비를 이끌어온 것은 부유층이었다. 이들이 지출을 줄이면 이미 고금리와 관세 부담을 지고 있는 미국 경제는 한층 더 약해질 수 있다.
AI 붐이 커질수록 ‘AI 한파’가 몰고 올 연쇄 충격도 커진다. 만약 기술이 지금까지의 화려한 약속을 실제로 실현한다면, 새로운 역사 한 장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그 광란의 추격전 또한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