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특성이 유사한 '지캐시(Zcash)'가 미국에서 최근 1년간 1140% 급등하며 가상화폐 시장의 새 주목 대상으로 떠올랐다. Zcash는 비트코인처럼 최대 발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돼 있지만, 거래 당사자와 금액을 숨길 수 있는 것이 핵심 차별점이다.
이 익명성은 그러나 '자금 세탁 악용'이라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업비트와 빗썸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이같은 이유로 지난 2019년 이후 Zcash 상장을 폐지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Zcash의 인기 이유로 최근 세 가지를 꼽았다. △윙클보스 형제 등 비트코인 선구자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고, △금융당국의 조사 종결로 규제 리스크가 해소됐으며, △기관 투자자들의 접근성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
WSJ에 따르면, 비트코인이 주류로 올라서면서 오랜 가상화폐 마니아들 일부는 이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들이 중시하던 프라이버시를 더 이상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에서다. 또 다른 이들은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갑자기 비트코인을 포용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코인 가격 부진에 지친 이들도 있다.
이제 비트코인 초기 전도사들은 또 다른 디지털 토큰, Zcash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WSJ는 밝혔다. 윙클보스 형제(타일러·캐머런)는 ‘프라이버시 코인’이라 불리는 이 코인에 크게 베팅한 비트코인 선구자들 중 하나다. 이 코인은 사용자가 거래 세부 내용을 감출 수 있게 해준다.
Zcash의 익명성 강조는 일부에게 가상화폐 초창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핵심 가치로 여겨졌다. “2013년 무렵의 비트코인 같은 느낌”이라고 배리 실버트는 WSJ에 말했다. 그는 디지털커런시그룹(DCG)과 세계 최초 비트코인 상장 펀드를 만든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츠의 창업자다.
올해 DCG는 Zcash를 최대 보유 자산 중 하나로 삼았다고 WSJ는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지난해 11월 그레이스케일은 규제당국에 자사의 Zcash 트러스트를 상장지수펀드(ETF)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반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조치다. 이 발표는 코인 랠리에 기름을 부었다.
WSJ에 따르면, Zcash는 최근 한 달 동안 약 50%, 지난 1년간 1140% 상승했다. 비트코인이 같은 기간 각각 8% 오르고 24%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Zcash 급등의 또 다른 요인은 미국 규제당국이 이 코인의 프라이버시 기능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사그라든 것이다.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 코인에 대한 조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Zcash의 시가총액은 89억 달러(약 13조 3891억 6000만 원)로 비트코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소형 가상화폐들은 급등 뒤 폭락하는 역사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WSJ는 경고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의 저명한 후원자들 일부가 몰려들고 있다. 윙클보스 형제는 지난 11월 Zcash를 보유할 디지털 자산 트레저리 회사인 ‘사이퍼펑크 테크놀로지스’ 출범을 위해 5000만 달러(약 752억 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요란한 마케팅을 앞세워 등장한 신종 프로젝트가 아니다”라고 캐머런 윙클보스는 말했다.
가상화폐 업계에서 뜨거운 이름이 됐지만, Zcash는 10년 된 코인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2016년 매사추세츠 공대, 존스홉킨스대 등 출신 과학자·엔지니어 그룹이 Zcash를 설립했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비트코인을 복사한 것. 이들 창업자는 프라이버시 결함을 개선하려는 의도로 Zcash를 만들었다.
Zcash는 비트코인처럼 공개 장부에서 자금 송수신이 가능하다. 핵심적 차이점은 Zcash가 ‘은폐(shielded) 주소’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 이 기능은 암호화를 통해 송신자, 수신자, 거래 금액 등 민감한 정보를 숨긴다.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s. 거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도 거래 검증을 가능하게 하는 암호화 체계)’ 기술에서 이 Zcash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이 기술은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넘기지 않고도 증명을 가능하게 해, 신원 확인 분야에서 주목 받고 있다.
사용자는 ‘뷰잉 키(viewing key)’를 생성해 규제당국이나 감사인에게 거래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이 기능은 막대한 상업적 잠재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급여나 공급업체 관계 같은 민감한 정보를 숨기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Zcash는 독재 정권이 금융 감시를 통해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는 것에 맞서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이는 가상화폐의 뿌리에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Zcash는 비트코인이 마땅히 됐어야 할 것, 원래 의도된 것”이라고 멀티코인 캐피털의 공동창업자 투샤르 자인이 WSJ에 말했다. 그의 회사는 최근 Zcash에 상당한 포지션을 구축했다.
비트코인 사용자들은 블록체인에서 실명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공개 장부 때문에 추적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많은 블록체인 분석 회사들이 당국의 ‘익명’ 거래 해독과 불법 활동 추적을 돕는다.
반면, Zcash가 제공하는 추가 프라이버시 레이어를 위험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WSJ는 강조했다. 당국은 테러리스트 등 악의적 행위자들이 제재 회피와 범죄에 이 프라이버시 코인을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이외에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규제당국들이 인가된 거래소에서 이 프라이버시 코인 상장을 금지하거나 제한했다.
다만, 블록체인 분석가들은 테러 단체들이 주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한다고 지적한다. 프라이버시 코인은 규모가 훨씬 작아 거래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Zcash 열풍에도 불구하고, 이 코인에는 비트코인의 신화적 지위를 높였던 요소가 없다. 바로 신비로운 창시자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달리, Zcash 창업자 중 하나는 계속 공개적으로 활동 중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 컴퓨터보안 전문가이자 암호학자인 주코 윌콕스-오헌은 Zcash 공동창업자들이 세운 일렉트릭코인컴퍼니(ECC)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2023년 말 그 역할에서 물러난 뒤로는, Zcash 발전을 돕는 ‘실드 드랩스’에서 최고제품책임자(CPO)로 일하고 있다. 지난 12월 그는 윙클보스 형제의 사이퍼펑크 테크놀로지스에도 전략 고문으로 합류했다. 현재 이 Zcash 비축 회사는 30만 개 이상의 토큰을 쌓아두고 있다.
사이퍼펑크의 주가는 지난 5월 35% 올랐고, 연초 대비로는 약 3.5% 상승했다.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디지털 토큰을 비축하는 회사들의 주가는 최근 다소 빛을 잃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