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블록체인 기반 재정집행’, 한국에서 세계 첫 현실화

‘예금토큰’ 형태의 전기차 충전 보조금 이달 지급, 정부 업추비에는 10월부터

일론 머스크의 ‘블록체인 기반 재정집행’이 한국에서 세계 첫 현실화

일론 머스크는 지난 2025년 미국의 ‘정부효율부(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이끌며, 투명성 확보와 비효율 제거를 목표로 블록체인 기반의 재정집행을 시도했다. 부적절한 연방정부 지출, 유효한 신원조차 없는 수급자에게 흘러간 복지예산 등을 문제 삼으며, 현금과 카드로는 이를 추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블록체인을 통해 미국 정부지출 4조 7000억 달러(약 7110조 1600억 원)에 대해 기술적 ‘재정 민주주의’를 구현하자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적법 절차와 미 의회 승인 없이 강행된 접근 방식이 사법부의 제동에 걸리면서 그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머스크의 주장이 오는 10월부터 한국에서 구현된다. 국고보조금에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급수단을 적용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

17일 블록체인업계에 따르면, 한국 재정경제부가 올해 4분기부터 공무원 업무추진비를 블록체인 기반의 ‘예금토큰’으로 집행하는 시범사업에 착수한다.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2026년도 기획형 규제샌드박스’ 과제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활용 국고금 집행 사업이 선정됐다. 국고금 집행에 블록체인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법적 근거와 제도적 틀을 갖춘 방식으로 ‘재정의 디지털 전환’을 현실화하게 됐다.

업추비를 카드 대신, ‘예금토큰’으로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은 현재 정부구매카드(신용·체크카드)로 집행되는 업무추진비를 예금토큰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예금토큰이란 시중은행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지급수단인 토큰으로 전환한 것이다. 예금과 본질이 같고, 지갑간 직접 전송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의 기관용 디지털화폐(CBDC)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록으로, 집행 과정이 실시간 공개된다. 사용 가능 시간과 업종은 사전에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결제가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실행된다. 
                                                  
현재 업무추진비는 심야·주말 등 제한 시간에 사용할 경우, 사후 소명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이 있다. 예금토큰 방식이 도입되면, 허용 시간과 업종을 스마트 콘트랙트로 설정해 집행 부정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카드사 같은 중개자가 없는 직접 결제 구조로, 소상공인의 관련 수수료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현행 국고금관리법은 업무추진비 등 관서운영경비를 정부구매카드로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예금토큰 활용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재경부는 규제샌드박스 특례를 적용해 이 법적 제약을 한시적으로 면제받았다. 블록체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업무추진비의 집행 가능 시간과 업종을 사전에 설정·관리할 수 있어 집행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첫 사례는 전기차 충전 보조금
이번 시범사업은 정부가 블록체인 기반 예금토큰을 국고금 집행에 적용하는 두 번째 사례다. 첫 번째 사례는 재경부·기후에너지환경부·한국은행이 지난 3월 24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추진 중인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 국고보조금 시범사업’. 

300억원 규모의 이 사업은 대형마트, 영화관, 아파트 단지 등에 중속 충전시설(30~50kW) 설치를 지원하면서, 보조금을 예금토큰 형태로 직접 지급한다. 한국환경공단이 사업자 선정을 마치고 6월부터 이를 지급할 예정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협약 체결 당시 “2030년까지 국고금 집행의 1/4을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블록체인 기반 국고금 집행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디지털화폐 인프라를 계속 확장하겠다”고 했다. 

머스크 DOGE와 같은 문제의식
한국의 예금토큰 재정집행 실험은 머스크가 이끌었던 미국의 ‘DOGE’와 비교된다. 두 프로젝트 모두 재정 집행의 투명성 확보와 비효율 제거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수단과 경로는 크게 달랐다.

DOGE는 2025년 1월 출범 직후 미국 재무부의 재정서비스국(Bureau of the Fiscal Service) 결제 시스템에 머스크 측 인사들을 전격 투입했다. 이 시스템은 사회보장연금, 메디케어, 세금환급 등 미국 연방정부 지출의 약 88%를 처리하는 핵심 인프라다. 취임 2주도 안 된 시점에 기술 기업 최고경영자와 25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외부 민간인이 이 시스템에 접근하자, 미국 18개 주의 법무공무원들이 연방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의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2025년 2월 8일 DOGE의 시스템 접근을 즉각 차단하는 임시 금지 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수백만 미국인의 민감한 금융 데이터를 보안 심사를 받지 않은 외부인에게 개방하는 것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닛 바르가스 판사도 같은 달 14일 해당 명령을 연장했다. 

적법 절차와 의회 승인 없이 강행된 접근 방식이 미국 사법부의 제동에 걸리면서 머스크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반면, 한국의 예금토큰 재정집행은 법령 개정과 규제샌드박스라는 제도적 통로를 택했다.

한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DOGE는 기술이 아니라 절차에서 실패한 것”이라며 “의회 입법 없이 행정명령 하나로 미국 연방 결제 인프라 전체를 통제하려 한 것은 미국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30년까지 국고금 25% 디지털화폐로
한국 정부의 구상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멈추지 않는다. 구윤철 부총리는 올 1월 발표한 ‘2026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국고금 집행의 25%를 디지털화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인 인가제, 준비자산 100% 이상 유지 의무,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율 등을 담은 법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를 통해 기술적 안정성을 검증했다. 이를 발판으로 전기차 충전 보조금(1호)에 이어 업무추진비(2호)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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