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의 성공은 도전의 결과.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메모리 가격은 내년이 정점일듯. 2028년 년 매출 반토막날수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한때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국내 반도체 기업이 인공지능(AI) 혁명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떠올랐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의 ‘만년 2위’에 머물렀던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이제는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굳히며 글로벌 반도체 지형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하이닉스의 진짜 시험대라고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AI 투자 열풍을 등에 업고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메모리 산업 특유의 공급 과잉과 가격 급락의 사이클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재원 조달 등이 2027년 이후 어려워질 경우, 이 메모리 업체의 매출이 2028년 거의 반토막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높은 수익성이 급감할 수 있다고 일부 증권사들이 지적한다. 여기에 중국 신흥 메모리 업체의 증산이 겹치면 초과공급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외의 정치적 투자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달 초 마이크론의 뉴욕주 공장 착공식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향해 “미국으로 데려와 공장을 짓게 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국 이재명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서남권 지역에 생산시설을 확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극심한 침체를 맞았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회사는 이 충격으로 사실상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매출은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고, 시가총액은 겨우 5억 달러(약 7396억 5000만 원)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추락했다. 이후 약 10년에 걸쳐 하이닉스의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하이닉스를 사실상 분해 매각하려는 인수 시도를 벌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가까스로 이를 피하며 생존했다. 결국 2012년,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던 하이닉스는 한국 SK그룹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지금의 하이닉스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지난 6월에는 잠시나마 삼성전자를 제치고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오랜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사실상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제품인 HBM 분야에서는 삼성을 크게 앞서고 있다.

AI 붐은 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5월 시가총액은 1조 달러(약 1479조 3000억 원)를 돌파했다. 이어 7월 10일에는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해 265억 달러(약 39조 2014억 5000만 원)를 조달했다. 이는 외국 기업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상장 자금이다.

상장 다음 날에는 주가가 다소 하락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매도때문이었다. 하지만, 2025년 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주가는 약 10배(1000%) 상승한 상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이번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과, 지난 3월까지 1년 동안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500억 달러(약 73조 9850억 원)의 현금은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될 예정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향후 5년 동안 전체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만큼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이다. 최근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배 증가했다.

물론 AI 열풍 자체를 하이닉스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열풍을 기회로 바꾼 회사라는 점에서 하이닉스의 부활은 매우 놀랍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최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이다. 이 때문에 기존 강자들이 대부분 계속 우위를 유지한다. 후발주자가 선두를 추월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하이닉스는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역전에 성공했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민첩성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꼽았다. 2010년대 초반 당시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의 약 40%를 차지했다. 반면, 하이닉스의 점유율은 약 25%에 그쳤다. 늘 삼성의 그늘에 가려 있던 2위 업체였던 만큼, 하이닉스는 경쟁사를 뛰어넘을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드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성능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칩을 더욱 미세화하는 대신, 물리적 한계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고 2013~2018년 최고경영자 박성욱은 회고한다.

그 전환점은 2008년 찾아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당시 인텔에 밀려 2위였던 미국 반도체 기업 에이엠디(AMD)가 하이닉스에 그래픽처리장치(GPU)용 적층형 메모리 개발을 제안했다는 것. 양사는 이미 이전 세대 그래픽 메모리 제품을 함께 개발해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었다.

2013년 첫 HBM 제품은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여러 층 쌓으면 기존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라이벌들의 실책은 추가적인 도약의 계기가 됐다. 2019년 삼성전자는 다른 종류의 칩에 투자하기 위해 HBM 팀을 축소했다. 이 기술의 미래를 믿었던 엔지니어들이 하이닉스로 이탈했다. 제품 지연으로 고전하던 인텔 출신의 엔지니어 다수도 이 한국 메모리 제조사에 합류했다.

기업 문화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가 냉혹한 능력주의를 통해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 하이닉스는 협업을 포용한다. 전 인사책임자였던 현선엽은 삼성의 수직적이고 부서 간 칸막이가 쳐진 환경과 달리, 하이닉스는 잦은 일대일 면담 같은 전사적 관행을 통해 직원들이 소신 있게 의견을 말하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장려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회사 엔지니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연구하도록 독려받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실패한 프로젝트는 ‘실패 사례 연구’로 자산화한다. 이는 적층된 칩들 사이의 틈을 몰딩 액체로 채워 열을 분산시키는 ‘대량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필(MR-MUF. Mass Reflow-Molded Underfill)’ 같은 혁신 기술로 이어졌다는 것. 

이러한 기술 덕분에 하이닉스는 2022년 4세대 제품인 HBM3를 삼성보다 먼저 시장에 선보이며, AI 칩의 제왕인 엔비디아의 최첨단 메모리 단독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이닉스가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조심스러워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장 선도 기업의 위치에서 초호황기를 이끌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것. 경쟁사들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서버 플랫폼인 ‘베라 루빈(Vera Rubin)’에 탑재될 일부 HBM을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범용 디램 등 기존 메모리 시장에서는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세계 메모리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 기업은 모두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2040년까지 총 2조 달러(약 2958조 4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한국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폭발적인 수요와 치열한 경쟁은 과잉투자의 위험을 높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있다. 이는 경기 변동성이 매우 큰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호황기마다 반복돼 온 전형적인 현상이다.

지난 메모리 호황의 정점이었던 2018년, 하이닉스의 설비투자는 150억 달러(약 22조 1910억 원), 즉 매출의 약 40%에 달했다. 그러나 이듬해 서버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메모리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 결과, 다음 해 하이닉스의 매출은 33% 감소했다. 반도체 산업 특유의 막대한 고정비 때문에, 영업이익은 무려 87% 급감했다.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하이닉스는 설비투자를 매출의 약 1/3 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설비투자 비중은 평균 22% 수준이었다. 또한, 과거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으로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향후 수년간의 판매 물량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고 이 회사는 설명한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지난 1년 동안 거의 10배 가까이 상승한 메모리 가격이 내년에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고 투자회사 번스타인은 전망했다는 것. 그 결과, 2028년에는 하이닉스의 매출이 45% 감소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업체인 씨엑스엠티와 와이엠티씨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공급 과잉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정치권의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하이닉스가 수도권이 아닌 서남권 지역에도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하이닉스는 2600억 달러(약 384조 67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수 인력과 협력업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만큼 생산시설을 지나치게 분산시키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 회사 내부에서는 적지 않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했다.

미국 정부 역시 추가 투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하이닉스와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이미 인디애나주에 40억 달러(약 5조 9180억 원)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성공이 커질수록 감당해야 할 책임과 압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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