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증시 입성을 마친 가상화폐 발행사 서클의 화려한 데뷔에 강력 제동이 걸렸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거물 제이피(JP)모간이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시장의 과도한 낙관론을 반박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전망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전 세계 결제망을 뒤엎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실물 경제에서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경고다.
FT에 따르면, 향후 몇 년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1조~2조 달러(약 1463조 6000억~2927조 2000억 원) 규모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일부 증권사들의 전망이 “터무니없이 낙관적”이라고 JP모간 글로벌 시장 전략팀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축했다. 앞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등은 서클의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국가 간 송금과 대규모 자금 흐름을 근거로 들며 스테이블코인이 수년 내 몇조 달러(몇 천조 원) 시장으로 팽창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JP모간은 현재 스테이블코인 수요의 88%가 여전히 가상화폐 거래소 내부의 ‘윤활유’ 역할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비트코인 반감기와 신흥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을 감안하더라도 2028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5000억 달러(약 731조 4500억 원) 수준의 완만한 확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론상으로는 꽤 멋져 보인다고 FT는 설명했다. 이들은 국경을 초월해 거의 실시간으로 모든 가치를 전송하겠다고 공언한다. 그것도, 현재 부과되는 비용보다 훨씬 낮은 거래 수수료로. 스마트 계약은 에스크로(결제 대금 예치)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의 위험을 제거하고, 구독료, 보험, 스포츠 토토 같은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게다가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완전한 투명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발명된 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이 개척한 실세계의 틈새시장은 몇 개에 불과하다고 FT는 꼬집었다. 가상화폐 거래 외에는 널리 채택되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의 수치를 마구 던져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낙관론의 진수를 맛보려면, 서클(Circle)의 기업공개(IPO)를 주관한 세 곳의 증권사가 최근에 낸 보고서를 보면 된다고 FT는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서클의 상장 초기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투자자가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3~5년 이내에 2400억 달러(약 351조 4800억 원)에서 1조 달러(1464조 50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씨티그룹은 자사의 총 주소가능시장(TAM) 추정치에 195조 달러(약 28경 5577조 5000억 원) 규모의 국가 간 송금액과 스위프트(SWIFT)를 통해 전송되는 1경 달러(약 1464경 5000조 원)의 자금 흐름을 포함시켰다.
JP모간은 스테이블코인이 22조 달러(약 3경 2203조 6000억 원) 규모의 미국 광의 통화(M2. 현금통화와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예금(투신사 MMF 포함)에 만기 2년 미만 금융상품(예적금, 시장형 및 실적배당형, 금융채 등)의 합계) 공급량 중 10%를 차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한편, JP모간의 글로벌 시장 전략(Global Markets Strategy) 부서에서는 이를 훨씬 더 신중한 확률의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향후 몇 년 동안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현재 2500억 달러(약 365조 9500억 원)에서 1조~2조 달러(약 1463조 8000억 원~2927조 6000억 원) 규모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본다. 2028년까지 500억 달러(약 73조 1900억 원) 수준으로 보다 완만한 확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
분석가 니콜라오스 판이르초글루 팀의 출발점은 앞으로 존재할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깎여 나가는 무이자 자산을 보유하려는 매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상화폐 생태계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윤활유’로서의 역할이 어떻게 진화할지 살펴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한다. 현재 이는 전체 수요의 약 88%를 설명한다. 여기서부터의 분석은 다소 감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고 FT는 밝혔다.
그들은 2024년과 2028년 사이의 비트코인 반감기 사이에 전체 가상화폐 생태계의 규모가 두 배로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재 수준에서 30% 성장한 것. 2028년 비트코인 가격이 약 14만 달러(약 2억 493만 2000 원)에 이를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추정치 못지않게 그럴듯해 보인다.
JP모간은 달러화 예금에 대한 수요가 신흥국 시장과 발맞추어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WEO) 데이터에 따르면, 신흥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8년까지 23%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불법 활동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명백한 성장의 동력도 아니다. JP모간은 더 엄격한 가상화폐 규제와 효율적인 치안 유지가 테더와 서클의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불법 행위를 줄일 수 있겠지만,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수많은 기상천외한 토큰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제부문은 어떨까? “이론적인 토큰화·블록체인 기반 세상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상호 운용성이 높겠지만, 현재 실무적으로 이러한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대부분 법정화폐로 시작해 법정화폐로 끝난다. 이 때문에 온/오프램프(법정화폐와 가상화폐를 환전하는 통로)가 필요하다. 이러한 온/오프램프 요건은 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데 상당한 마찰과 비용을 추가하며, 특히 최근 몇 년간 핀테크 발전으로 전통 금융 시스템 내에 더 빠른 결제 인프라가 등장한 점을 고려할 때 전통 금융 시스템에 비해 매력을 떨어뜨린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결제 분야에서 스테이블코인 사용의 대폭적인 증가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실제로 미국 단기금리 연구 부서의 동료들도 전방 시장 참여자들이 단기적인 큰 폭의 성장에 회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인프라와 생태계가 여전히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관적인 견해를 취하여 향후 몇 년 동안 결제 분야에서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10배 증가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고작 150억 달러(약 21조 957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낙관론자들은 중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위안화(e-CNY)의 빠른 채택을 지적한다. 디지털 위안화는 2022년 말 136억 위안(약 2조 9381억 4400만 원)에서 현재 3000억 위안(약 64조 8120억 원) 이상의 시가총액으로 성장했다.
이에 대해 JP모간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첫째,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은행의 부채이며, 따라서 이는 실질적으로 유통 중인 지폐를 대체한다. 본원통화(M0)의 목표 비중이 명시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M0 수준을 기준으로 볼 때 중기적으로 10~15%의 비중이 타당한 목표라는 의견이 있다. 이는 대략 1조 3000억~2조 위안(약 280조 8520억 원~432조 800억 원)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무이자가 적용되는 토큰화된 머니마켓펀드(MMF)의 일종으로, 중앙은행의 부채라기보다는 사실상 민간 부문의 부채에 가깝다”는 것.
“둘째, 디지털 위안화는 완전한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반 원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인민은행(PBoC)이 감독하는 중앙집중형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한다. 알리페이(Alipay)나 위챗페이(WeChat Pay) 같은 중국 내 다른 모바일 및 전자 결제 옵션과 경쟁한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글로벌판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을까? JP모간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고 FT는 설명했다. 자체 플랫폼에서 담보형 전자 사설 화폐를 제공하는 핀테크 결제 기업들은 퍼블릭 블록체인의 필요성을 입증해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디지털 화폐는 민간 부채이며, 그런 점에서 역시 민간 부채인 은행 예금과 더 유사할 수 있다. 은행 예금과 알리페이·위챗페이 잔액의 차이점은 후자가 중앙은행 준비금이라는 공공 부채를 보유한 준비금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인 반면, 은행 예금은 비록 예금자 보호 제도를 통해 추가적인 보장을 받기는 하지만 자산 측면에서 대출과 부채 증권의 혼합으로 일치된다”.
“우리의 생각에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강력한 확장은 블록체인/가상화폐 생태계 혁명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전통적인 은행 및 금융 시스템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효율성을 높여온 중국 핀테크 결제 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같은 핀테크 기업들의 성공과 지속적인 결제 발전이 향후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줄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비관론이 헛다리를 짚은 것일 수도 있다. 요기 베라(또는 닐스 보어)가 관측했듯이, 예측이란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세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작동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므로, 어느 정도의 신중함이 권장될 수 있다.
실시간 국가 간 청산 시스템인 서클 페이먼츠 네트워크(Circle Payments Network)는 지난 5월 첫 거래를 밀어붙였으나, 환전과 라스트 마일(최종 전달) 배송을 위해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결제 망에 의존하고 있다. 가상화폐 송금이 기존 네트워크보다 효율적이려면, 외환(FX) 유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유동성이 어디에서 올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서클은 또한 스테이블코인을 거래 담보로 사용하는 것을 시험하기 위해 인터컨티넨탈거래소(ICE)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약속된 바는 더 짧은 결제 기간과 더 낮은 증거금 요구 조건이다. 그러나 모든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이 현재 분기별 미국 주식 거래량의 0.5%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장의 파괴는 아주 먼 미래의 전망이다.
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거래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사용하는 데 안심하려면, 준비금 감사 주기가 실질적으로 훨씬 짧아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소매 결제의 경우,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이미 신뢰할 수 있고 저렴하다. 주소가능시장(TAM)은 거대할지 몰라도, 파괴할 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
결론적으로, JP모간의 전략 팀은 과장 광고(vapourware)와 헛된 낙관(hopium)을 걷어낸 스테이블코인의 냉정한 현실을 제시한다고 FT는 평가했다. “서클의 기업공개(IPO) 가격을 책정할 때, 주식발행시장 (ECM)의 동료들도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FT는 개탄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