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AI 혁명의 뿌리는 2010년대…에너지·금융·경영 뒤바꾼 시대”

이코노미스트,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립, 금융위기가 데이터센터 투자 밑거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오늘날 인공지능(AI) 혁명은 2010년대의 기술·자본·에너지·경영 철학이 축적된 결과이며, 당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기업과 금융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 2010년대가 저금리와 기술기업의 전성기를 넘어, 오늘날 AI 산업과 자본시장, 기업 지배구조, 정부 정책의 토대를 만든 혁명적 시기였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당시 셰일가스 등 에너지 혁명이 AI 인프라의 토대를 만들었고, 화상회의 등 디지털 업무 혁명이 AI 자동화의 기반이 됐으며, 효과적 이타주의 등 AI 안전성과 공익을 둘러싼 철학이 그때 형성된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의 사모신용 등 자본시장 구조가 AI 투자에 자금을 공급했고, △주주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거대 기술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어떻게 규율할지에 관한 논쟁은 2010년대에 형성돼 지금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도 AI혁명을 위해, 기술·금융·전력 등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준다. 전력 공급과 데이터센터 입지, 장기 투자자금, 금융 위험 관리, 기업의 신뢰 확보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데이터·클라우드·전력·보안 등 AI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하고, AI를 업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안전성, 책임 소재, 고객 보호, 장기적인 재무 건전성을 AI 전략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시대로 기억되는 2010년대, 그러나 혁명적인 10년”
시대를 10년 단위로 나눠 평가할 때, 2010년대는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시기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오늘날 AI 모델과 로켓 개발에 몰두하는 테크기업 경영자들은, 자신들이 당시 만들어낸 소비자용 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깎아내린다는 것. 은행가들은 그 10년을 (방탕했던 과거 때문에) 경찰서의 숙취해소실에 갇혀 지내듯 보냈다.

과거 경영진이 오랫동안 누렸던 여름날의 들뜬 분위기가 지나간 뒤, 2010년대는 많은 기업의 최고 경영진에게 규율과 긴축의 겨울이 됐다. 정부와 여론, 행동주의 투자자, 기업 이사회가 경영진을 압박하면서, 이전과 같은 자유로운 경영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시대로 여겨지는 2010년대는 투자자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1870년대나 1920년대, 1990년대보다 오늘날 기업 세계를 이해하는 데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2010년대는 돌아보기에 민망한 시대였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혁명적인 시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AI 붐을 가능하게 한 시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2010년대를 새롭게 재평가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미국은 어떻게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에너지 집약적인 건설 붐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그 답은 2010년대에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셰일 혁명 덕분에 미국은 10년이 끝날 무렵, 반세기 넘는 기간 만에 처음으로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다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오늘날 데이터센터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하는 자본의 원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는 여러 제약이 부과됐고, 세계 대출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자본시장에서 활용되는 여러 금융 기법이 2010년대에 이미 시험되고 검증됐다. 특수목적기구(SPV)를 활용하는 방식부터 역외 보험 자본을 동원하는 방식까지.

“사무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꾼 2010년대”
이러한 AI 투자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AI가 사무직 노동을 혁명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그러나 사무실의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업무 환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러려면 2010년대를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정치인들은 우버(2010년 설립)나 도어대시(2013년 설립) 같은 플랫폼에서 일하는 ‘긱 노동자들’의 처우를 걱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난 곳은 사무실이었다.

직원들은 목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을 감시 도구처럼 활용하는 이른바 ‘랜야드 스타시(Lanyard-Stasi·옛 동독 중앙정보부의 목걸이 끈)’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든 면모를 직장에 드러내야 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여기에는 업무 역량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과 정체성까지 포함됐다는 것.

직원들은 푹신한 가구가 놓인 현대식 사무실, 즉 모든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현대판 판옵티콘’에 출근했다. 그곳에서 데이터독(2012년 설립)이나 스노우플레이크(2012년 설립) 같은 기업의 도구를 활용해 각종 업무 현황판인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위워크(2010년 설립) 같은 공유 오피스의 공용 좌석인 ‘핫 데스크’에 앉아, 줌(2011년 설립)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멀리서 기관총 소리가 들리는 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슬랙(2013년 설립)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로운 경영 사상이 없었던 시대라는 착각”
2010년대가 한창 진행 중일 때만 해도, 이 시기는 새로운 경영 사상이 거의 등장하지 않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역설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다. 효과적 이타주의는 엄격한 윤리적 계산을 통해, 가능한 한 보편적인 선을 실현하려는 철학이다. 이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윤리적 원칙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2010년대 초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의 학문적 환경에서 탄생했을 법한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2009년 시작된 온라인 게시판 ‘레스트 레서스’ 등에 정리됐고, 2011년 설립된 자선단체 ‘8만시간(80,000 Hours)’ 같은 조직을 통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오늘날 효과적 이타주의는 실리콘밸리 AI 연구소들의 지배적인 철학이 됐다. 그 영향력을 고려하면,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실리콘밸리 전체가 하나의 철학을 공유한다고 볼 수는 없다. 효과적 이타주의와 AI 안전성에 대한 강조는 기업과 연구자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오늘날 정치권을 움직이는 정책 아이디어도 당시에 나와”
정치인들 역시 혁명적이었던 그 10년이 남겨놓은 아이디어를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불평등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던 2010년대에는 주변부의 정책 아이디어에 가까웠다. 하지만 AI가 핵심 의제로 떠오른 2020년대에는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정책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지지를 얻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문제도 커진다’는 반독점 정책 기조 역시, 2010년대 중반 미국의 명문 로스쿨에서 형성됐다는 것. 선진국 전반에서는 부유층에 대한 부유세가 좌파 진영의 인기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정책의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가브리엘 주크만이 2010년대에 제시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2010년대의 공격은 2010년대의 방어 수단으로 막아야”
2010년대의 공격에 맞서려면, 2010년대에 만들어진 방어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앤스로픽과 오픈AI는 모두 공익과 주주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쉽도록 설계된 ‘공익법인(PBC·Public Benefit Corporation)’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법인 형태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한다. 두 AI 연구소 모두 미국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된 공익법인 제도는 2013년 델라웨어주 법률에 도입됐다.

2019년에는 영향력 있는 최고경영자 단체인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기업은 앞으로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오늘날 이 성명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가장 진지하게 강조하던 시기의 유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주 앤스로픽은 자사 지분의 5%를 비영리 목적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페이스엑스(X) 역시 대중에게 지분을 제공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기업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2010년대가 물려준 조건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2010년대의 모든 아이디어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물론 2010년대의 모든 거대 담론이 온전히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거의 0% 수준으로 유지하던 정책은 2022년에 종말을 맞았다. 기업들이 사회정의 문제를 열성적으로 내세우던 캠페인도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기업 세계에는 여전히 과거의 2010년대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영역들이 있다. 사모펀드들은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고 보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어쩌면 2010년대 이후의 새로운 금융 환경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은 여전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컨설팅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맥킨지의 직장 내 여성과 소수인종에 관한 연구는 당시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경전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달에는 비슷한 문제의식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한 파트너가 강등됐다는 것. 경쟁사인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미국 소비자의 77%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우려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지난해의 69%보다 상승한 수치”라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본군 병사들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이른바 ‘B코프(B-Corp) 진영’의 일부 강경파는 여전히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10 비전: 2010년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향한 향수와 같은 현상이 2010년대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셰일가스 황금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황금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드레이크 같은 대형 음악 스타들은, 마블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초월하는 상업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커질 것이다. 2010년대 대부분을 위기 속에서 보냈던 유로존은 이제 또 다른 위기의 문턱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를 이해하려면 2010년대를 이해해야 한다.

페이스북을 소재로 한 신작 영화 ‘소셜 레커닝(The Social Reckoning)’은 2010년대를 돌아보는 작품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흐름의 하나일 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2010년대 후반에 가상자산 사기를 저지른 샘 뱅크먼 프리드에 관한 시리즈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그는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의 팟캐스트 ‘머니 토크스(Money Talks)’ 인터뷰에 교도소에서 응했다고 한다.

또 다른 2010년대 사기범인 엘리자베스 홈스 역시 새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가 있다. 세계 최고 부자인 그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긴 다큐멘터리 가운데 하나의 주인공이 됐다.

그가 추진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결국 우리가 얻은 것이 고작 ‘140자’뿐이라는 2010년대의 냉소적인 구호에 대한 해독제와도 같다. 이는 당시 트위터의 짧은 메시지 형식이 기술 혁신의 한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을 가리킨다.

하지만 머스크는 동시에 전기차 산업의 거물이며, 법의 제약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그는 2010년대의 인물인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0년대가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못밖았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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