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사케는 한국술, 사시미는 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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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화이트리스트 제외등 한·일간에 사실상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여당대표가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신 일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에서는 “‘반아베’ ‘반일본바람 와중에 왠 일본 술이냐고 비난하고, 한쪽에서는 그러면 일식집이 다 문닫기를 원하느냐. 반중(反中)하면 짜장면을 먹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마치 조선말기 성리학논쟁을 보는 것 같다. 정치지도자들이 본질을 떠나 '말 장난'만 하니 국민들까지 가볍기 그지없다. 오사케와 사시미의 뿌리도 모른 채 말이다. 오사케는 청주(淸酒). 청주는 양조주의 일종으로 백미(白米)를 원재료로 하여 빚어낸 술이다. 그 제조법은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았다. 나라시대의 문헌 고사기(古事記)’에 보면, 한국의 양조 기술자가 일본에 가서 술을 빚어 응신천황에게 바쳤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회(사시미)문화를 문헌에서 찾아보면 대략 1399년 경의 고서에서 발견 된다. 조선 2대왕인 정종에 해당하는 시기다. 그 이전에는 사시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더구나 일본은 고서적이 사라진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일본의 사시미문화는 1592년 임진왜란 이후에 크게 발달했다. 임란 때 끌려간 사람들에 의해 전수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고려시대 중기 이미 이규보의 시에 회와 술을 먹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이전부터 회문화를 즐겼다는 얘기다. 세종 때 저술될 훈몽자회(訓蒙字會)에도 민어로 구이·조림·어채···만두 등 다양하게 음식을 해먹었다고 기록했다. 17세기초 조선조 숙종때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에는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썰어, 얇은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생강이나 파를 곁들어 생선회를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일식집 음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회에 대한 최고 기록은 공자가 쓴 논어의 향당편에 최초로 나온다. 음식은 정갈해야 하며 회는 가늘어야 한다고 돼 있다. 맹자가 밝혔듯이 공자가 동이족(東夷族)인 점을 고려할 때 회는 본래 우리민족이 즐겨먹던 음식인 것 같다. 일식 중 초밥 역시 우리나라 식혜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청국장을 청나라 것으로 알 정도니 오죽하랴.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 즉 고조선이다. 만주는 물론 한반도에 산재해 있는 신석기 청동기 유적지에서는 탄화된 콩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600,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은 산융(山戎·동이족의 한갈래)으로부터 숙(·)을 가져와 온 세상에 퍼뜨렸다고 기록했다. 중국 고대의 경제학서인 관자에도 제나라 환공이 만주지방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 전역에 보급했다고 적혀 있다. 1세기 무렵에 쓴 중국 사기(史記)에는 (:메주시)는 외국산이기 때문에 아무나 손쉽게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고구려 선장양(善藏釀)’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고구려 사람들은 발효음식, 즉 술과 장을 잘 담근다는 뜻이다. 신라 일성왕 때(139) ‘서리가 내려 콩농사를 망쳤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폐백품목인 시(:메주)가 있고, 15세기에 지어진 골계서(滑稽書)에 법시(法豉)라는 말이 있으며, 1527년에 발간된 훈몽자회에는 푸른곰팡이를 띄워서 만든 장, 즉 청국장(淸麴醬)이라는 단어가 있다. 청나라는 1636년에야 건국된 나라다.

우리말과 풍습에는 콩과 관련된 것이 많다. 된장, 간장, 두부, 청국장, 콩나물, 고추장 등은 콩으로 만든 대표적인 식품이다. 장을 담가먹는 항아리를 안고 사는 민족은 우리뿐이다. 입춘날 콩으로 귀신 쫓는 풍습도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믿는다는 속담이나 숙맥이라는 고사성어도 흥미롭다. 특히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로 콩인지 보리인지 가릴 줄 모른다는 뜻이다.

콩연구가 유미경씨가 쓴 우리콩 세계로 나아가다라는 책에 따르면 콩이 서양에 전래된 것은 1739년 프랑스 파리식물원이 처음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 의하면 1770년 영국에서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콩씨를 보냈다.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 콩을 수집해갔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출판부의 콩 대두 soybean’이 밝히고 있다. 미 농무부는 1947년까지 1만개의 유전자형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갔다. 최근 미국은 세계 콩 생산량의 40%, 세계 콩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실상이 이런데도, 우리 스스로 회를 사시미로, 청주를 오사케로 부르며 일본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 다양한 사케 역시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우리 술기술자들에 의해 전수됐을 것이다. 반면 조선말 삶이 핍박해지고 일제 강점기 밀주금지령과 박정희 시대 국세차원에서 밀주를 금지하면서 다양한 전통주의 맥을 사라지고, 일본 술로 각인된 것이다. 쌀막걸리가 허용된 것도 겨우 1977128일이다. 오늘날 한국의 다양한 전통술이 없어지고 그 명맥이 일본에 살아남은 이유다.

역사는 조금만 흘러도 전설의 고향이 된다. 그러나 역사를 모르면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킬 수가 없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부초와 같다. ‘청주=일본술’ ‘=일식’, ‘청국장=청나라 음식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한 대한민국은 부초와 다름 없다. 더 큰 문제는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할 줄 모르는 것이다.

chang@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