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BM이 하이닉스 닮아가…자본집약적 설비지출로 대박 기대”

WSJ, “몸 가볍던 빅테크 빅3가 AI인프라 1조달러 투자 때문에, 반도체 제조사처럼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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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재무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BM)이 근본적으로 변화해, 점점 반도체 회사를 닮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천문학적 설비투자 때문이다. 

빅테크는 ‘저비용 고효율’의 과거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반도체회사들처럼, 진입 장벽은 더욱 올라가고 있고 리스크는 극대화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단순한 성장성보다는, 막대한 자본적 지출(Capex) 대비 수익화 능력을 새로운 평가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WSJ은 “AI가 빅테크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설비투자로 대차대조표와 현금 흐름이 압박받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이들 기업을 다르게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밝혔다.

빅테크 기업들은 튼튼한 재정 상태를 자랑해왔다. 하지만 AI에 대한 지출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 투자자들의 테크기업들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정도로, 이는 비즈니스의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아마존은 AI가 기술 지형과 세계 경제를 변화시킬 것이라 믿으며, 지난 3년 동안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기업들과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이 맞다면, 이들 기업은 2023년부터 올해까지 총 6000억 달러(약 880조 5000억 원) 이상을 지출해 왔다고 WSJ은 분석했다.

이러한 ‘돈 잔치’가 지금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세 회사 모두 △튼튼한 대차대조표, △낮은 부채 비율, △증가하는 매출을 바탕으로 AI 붐에 뛰어들었기 때문. 이들 회사는 지난 3년 동안의 (대부분은 AI와 관련 없는) 수익성 덕분에, 계속 돈을 쓰는 결정을 내리기는 쉬웠다. 이 기간 이들의 누적 순이익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7500억 달러(약 1100조 775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금 유출이 이들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AI 지출이 계속 증가할 경우, 각자의 사업 구조는 훨씬 더 급격하게 재편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MS의 현금 및 단기 투자는,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총자산의 약 16%를 차지했다. 이는 2020년 약 43%에서 크게 줄어든 것. 알파벳과 아마존의 상대적 현금 비중 역시, AI 인프라 지출로 인해 자산 규모가 부풀어 오르면서 상당히 줄어들었다.

현금 흐름 또한 타격을 받고 있다. 알파벳과 아마존은 올해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 
설비·자산 등의 재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주주에게 분배하거나 부채 상환 등에 쓸 수 있는 현금)이 작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MS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최근 4개 분기 잉여현금흐름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하지만, 현금흐름표에 보고되는 자본 지출에는 데이터 센터 및 컴퓨팅 장비의 장기 리스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이 금액들이 포함됐다면, 잉여현금흐름은 감소했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에 따르면, 리스 비용을 포함할 경우 MS는 내년에 약 1590억 달러(약 233조 3007억 원)를 지출할 예정이다. 아마존은 약 1450억 달러(약 212조 7585억 원), 알파벳은 1120억 달러(약 164조 3376억 원)를 추가로 지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예측이 현실화한다면, 이 기업들은 4년 동안 주로 AI에 1조 달러(약 1467조 3000억 원)를 쓰게 되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이들 기업의 매출 성장이 AI 지출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AI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빚을 져야 할 것이다. 메타는 지난 10월 300억 달러(약 44조 19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며 부채를 두 배로 늘렸다. 오라클은 오픈AI와 3000억 달러(약 440조 1900억 원)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계약을 체결한 후인 9월에 180억 달러(약 26조 4150억 원) 규모의 채권을 팔았다.

종합해 볼 때, ‘△약화된 현금 잔고, △줄어든 현금 흐름, △늘어난 부채’라는 변화들은 테크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에게 이는 테크기업을 다른 렌즈로 봐야 함을 의미할 수 있다. 즉, 테크기업은 사람들이 디지털화되면서 이익을 얻는 ‘확장성이 매우 뛰어난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기업’이 아니라는 것. 성공 여부가 지출 결정에 달려 있는 ‘자본 집약적(Capital-intensive) 기업’으로 테크기업을 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WSJ은 설명했다.

AI 사용자 수나, AI 개발자들과의 계약에서 발생할 잠재적 미래 수익인 ‘잔여 이행 의무(RPO·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 기업이 이미 체결한 계약 중 아직 매출로 인식하지 않은, 미래에 수익으로 전환될 확정된 약속 금액의 총합) 같은 새로운 지표를 사용해, 투자자들이 기업을 평가하고 적절한 가치를 매기게 될 것이라고 레이먼드 제임스의 테크 분석가 조쉬 벡은 WSJ에 말했다.

테크기업들은 AI 지출로 어떻게 큰 수익을 낼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투자자들은, 무한한 인내심을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최근 아마존 주가는 약 5% 하락했고, 구글은 약 2.5% 떨어졌다. AI 붐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이는 합리적인 적응 과정이다. 테크기업들은 대규모 클라우드 운영을 개발하면서, 수년간 어느 정도 자본 집약적인 성격을 띠어왔다. 하지만, AI는 그 집약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WSJ은 분석했다.

지출이 너무 많이 증가해서, 어떤 면에서 기술 산업은 이제 반도체 제조와 같은 산업을 더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것. 반도체 산업은 최첨단 공장에 수백억 달러(수십조 원)를 베팅하는 곳이다. 건설에 수년이 걸리지만, 수익을 내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이러한 구조는 수익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수요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AI 인프라의 가동률 저하(underutilization)로 인한 잠재적 비용 손실을 포함한 새로운 위험이 따른다. 잘못된 기술에 베팅하는 것 또한, 재앙이 될 수 있다.

기술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는, 지출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결정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MS의 최고재무책임자인 에이미 후드는 지난 10월 애널리스트들과의 컨퍼런스콜에서 이 문제로 고민했음을 내비쳤다. MS가 AI 컴퓨팅 파워를, 오피스 제품군이 있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우선 배정하고 있다는 것. 빠르게 성장하는 MS의 애저 클라우드 서비스에는 가용 자원이 적게 돌아가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테크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함에 따라, 더 많은 어려운 결정들과 그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게 됐다고 WSJ은 재차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