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2011년 스티브 잡스를 이어받은 이후, 이 회사 연 매출을 4배, 시가총액을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CEO로 자리매김한 그의 퇴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공통된 고민에 빠졌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체할까”라는 것.
문제는 ‘전설의 뒤를 잇는 자’가 대개 실패한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로, 에스앤피(S&P)500 내 ‘장수 CEO’ 후임의 66%가 전임보다 성과가 떨어졌고, 절반 가까이는 시장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조사가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잭 웰치 이후 17년 동안 두 차례나 후임 CEO 선정에 실패했다. 나이키와 보잉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팀 쿡이나 워런 버핏 같은 CEO는 후임자가 채우기에 너무 커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CEO 인사원칙으로 △승계계획 조기착수, △내부 승진 만능주의 경계, △장기적 인재 풀 구축 등을 제시했다.
사실, 팀 쿡은 애플 이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행복한 고민거리다. 2011년 스티브 잡스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이 아이폰 제조사의 수장은 연간 매출을 1080억 달러(약 159조 2244억 원)에서 4160억 달러(약 613조 3088억 원)로 만들었다. 영업이익은 340억 달러(약 50조 1228억 원)에서 1330억 달러(약 196조 686억 원)로,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약 516조 400억 원)에서 4조 달러(약 5897조 6000억 원)로 끌어올렸다. 그가 재임한 14년 동안, 매일 약 7억 달러(약 1조 320억 8000만 원)의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만이 전체적으로 더 많은 주주 가치를 창출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AI 열풍이 불어닥친 지난 2년 동안 이루어진 것. 빅테크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와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만이 일 평균 더 높은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들의 재임 기간이 현재 팀 쿡의 기간만큼 길어진 몇 년 뒤에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누적 순이익 1조 달러(약 1474조 4000억 원)에 육박하는 기록을 낸 CEO는 팀 쿡 외에는 전무하다.
하지만 이러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에는 함정이 따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도대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체한단 말인가? 2년 전 쿡은 팝스타 두아 리파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애플을 사랑하며 그곳에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당분간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쿡이, 이르면 내년에 물러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 ‘당분간’이 예상보다 짧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애플의 부러운 재정 상태는, 후임자가 신게 될 신발이 편안할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신발은 너무 커서 불편할 것이다.
‘대체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인물의 후임자를 준비하는 거대 기업은 애플뿐만이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11월 14일 월마트는 세계 최대 소매유통기업의 △해외 확장, △글로벌 팬데믹 대응,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온 더그 맥밀런이 12년 가까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미국 사업부 대표에게 자리를 넘긴다고 발표했다는 것.
며칠 전에는 ‘주식회사 미국’의 아이콘인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에서 60년 만에 곧 은퇴할 것을 앞두고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 섬유 공장을 1조 달러(약 1474조 4000억 원)규모의 투자 발전소로 키워냈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은행인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수장으로 곧 20년을 채우게 될 제이미 다이먼 역시, 더 이상은 자신의 퇴진이 “5년 남았다”는 농담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늘 퇴임이 5년 남았다고 말해왔다.
S&P 500 기업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2021년 11년에서 2024년 8년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우량 지수 기업 중 약 20%는 10년 이상 재임한 ‘마라토너 CEO’가 이끌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평균 시장 가치가 590억 달러(약 87조 132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5년 총 주주 수익률(배당 포함)이 93%에 이르는 등 평균보다 더 성공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재임 기간이 3년 이하인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200여 개 기업의 중간값보다 각각 2배, 거의 3배 높은 수치다.
당연한 결과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사회는 진작 다른 사람을 찾았을 테니까. 따라서 마라토너들이 마침내 바통을 넘길 때, 이를 이어받은 이들이 종종 비틀거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헤드헌터 업계에는 “전설적인 인물의 바로 다음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전설을 뒤이은 사람의, 그다음 사람이 돼라”는 격언이 있다. 혹은 그 다음의 다음 사람이 되는 게 낫다.
GE는 2001년까지 20년간 산업 복합기업을 이끌었던 잭 웰치의 걸맞은 후계자를 찾는 데 17년이 걸렸고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나이키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마크 파커가 보여준 엄청난 질주 이후, 두 번째로 성과가 부진한 CEO를 맞이하고 있다. 작년에 보잉을 이끌게 된 켈리 오트버그가 2015년 마지막 성공적인 조종사 제임스 맥너니가 떠난 후 장기 침체에 빠진 보잉을 구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후임자가 꼭 재앙 수준이어야만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임원 채용 전문 기업 스펜서 스튜어트가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S&P 500 기업의 마라토너 CEO 승계 사례를 조사한 결과, 후임자의 85%는 내부 승진자였다. 그리고 그 내부 승진자의 66%는 전임자보다 시장 대비 낮은 총 수익률을 기록했다. 더 심각한 것은 내부자든 외부 영입이든, 마라토너의 후임자 중 거의 절반이 S&P 500 전체 평균 수익률조차 밑돌았다는 점.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이런 ‘평균으로의 회귀(성과 하락)’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를 이코노미스트는 질문했다. 해답은 이렇다.
첫째, 승계 계획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다수 대기업은 서류상 승계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사회에서 말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새 CEO가 집무실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순간부터, 다음 CEO를 찾아야 한다”고 헤드헌터들이 떠드는 것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린게 아니라는 것.
역설적이게도, 이사회가 현재 CEO와 차기 CEO 모두가 기업의 장거리 주자가 되기를 바랄수록, 탐색은 더 일찍 시작돼야 한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짐 시트린이 설명하듯, 이런 경우 회사는 현재의 최고경영진(C-suite)을 건너뛰고 더 젊은 세대에서 후보를 찾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위 경영진과 달리, 떠오르는 샛별들은 10년 뒤 다음 교체 시기가 와도 여전히 에너지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인재들은 수는 많지만, 검증되지 않았다. 일찍 시작할수록 유망주를 식별하기가 더 쉽다고 시트린은 이코노미스트에 조언한다.
둘째, 승계 계획은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업데이트돼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3년 전의 적임자가 오늘날에는 적임자가 아닐 수 있다”고 콘페리의 클라우디아 피시 모리스는 말한다. 3년 전에는 챗지피티를 들어본 사람이 없었고, 세계화(globalization)가 지금처럼 험한 말이 되지도 않았으니까.
셋째, 특히 오늘날처럼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이사회가, 인기 없는 ‘외부인’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제시했다. 월마트는 내부 승계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폐쇄적인 성향의 버핏은 늘 측근을 선택하려 했다. 애플도 같은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플은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시급히 재고하고, △뒤늦은 AI 전략을 수립하며, △18년 된 아이폰을 넘어설 새로운 대형 히트작을 내놓아야 한다. 쿡은 이러한 과제들을 방치했다. 그래서, 버핏이 버크셔의 애플 지분을 매각하고 알파벳 주식을 사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쿡의 이사회는, 내부의 나무 그늘로부터 먼 곳에서 그의 후계자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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