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비트코인처럼, 이자도 없고 배당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금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궁극의 보험’이었다. 전쟁이 터지거나 경제가 무너질 때, 내 자산을 지켜줄 유일한 보루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은 이러한 오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전쟁이 발발하며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에너지 충격에 휩싸였지만, 정작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값은 약 15%가 내려앉았다. 글로벌 주식시장보다 더 가파른 하락세다.
금 폭락 이유에 대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전쟁 이후 채권의 ‘실질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이자가 없는 금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점을 우선으로 꼽았다. 이어, 튀르키에 등 각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가치 방어와 국방비 마련을 위해 금을 대거 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최근까지의 금값 폭등이 금 상장지수펀드(ETF) 붐에 따른 투기적 ‘밈(meme) 거래’ 양상을 띠면서 비트코인과 비슷한 모양새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안전자산이라는 탈을 썼을 뿐 사실상 가상화폐처럼 가격 상승만을 쫓는 폭탄 돌리기가 이어져 왔고, 현재 그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 있다는 것.
그러나, 이번 하락에 대해 블룸버그 등은 “금의 장기 펀더멘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근본적 가치 변화라기보다는, 과도한 랠리 뒤의 단기적 조정”이라며, 금에 대한 포트폴리오 5~10% 수준의 분산 유지 전략을 권고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자산의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현금 흐름을 창출해주기를 원한다. 채권은 이자를 지급하고, 주식은 배당을 제공한다.
그러나 금은 다르다. 금은 어떠한 현금흐름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보석이나 전자제품 같은 실물로의 용도가 금에 일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는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금 보유의 가장 큰 이유는, 위기 상황에 대비한 보험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이는 실제 위기든 상징적 위기든 마찬가지다.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금에 대한 집착 덕분에, 그 가치는 ‘완전히 0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금은 전통적으로 다른 자산이 흔들릴 때 가격이 상승하는 특성이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으로 전례 없는 에너지 충격이 촉발됐다. 원래라면 금이 빛을 발해야 할 시기다. 실제로 금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상승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유가가 급등했을 때는 더욱 크게 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금 가격은 약 15%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주식보다 더 큰 낙폭이다. 헤지 자산으로서 기대와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실질금리 상승.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보호 기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물가연동채와 유사하다. 하지만 물가연동채의 수익률이 상승하면,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은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진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한 이후 실질금리는 급등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실질금리는 약 0.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환경의 위험 증가와 함께,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다.
금 값의 또 다른 하락 이유는 중앙은행의 금 매도다. 러시아처럼 서방 제재를 우려하는 나라들에, 금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수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금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일부 중앙은행들은 이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3월 20일까지 2주 동안 튀르키에가 리라화를 방어하기 위해 약 80억 달러(약 12조 584억 원) 규모의 금을 매도했다. 인도 역시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도 국방비 조달을 위해 금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요인만으로 최근 금 가격 하락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해석은 금이 점점 가상화폐처럼 거래되고 있다는 것. 한때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투기적 시장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자산이 됐다.
이제는 오히려 금이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2월 말까지 약 60% 상승한 금 가격은 금 ETF 자금 유입 증가와 맞물렸다. 금 ETF 보유량은 1년간 25% 증가해 약 4200톤에 달했다. 최근 하락은 이러한 투기적 포지션 청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결국, 최근 몇 주는 금이 보편적인 헤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금의 본질적 매력은 전쟁이나 에너지 충격 대응이 아니라, 화폐 가치 하락(통화 가치 희석)에 대한 방어다.
정부 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를 줄이려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미국이 비용이 큰 전쟁을 수행하거나 각국이 에너지 보조금을 확대할 경우, 금 가격은 올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금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 투기적 투자자들이 더 많고, 기관투자가들이 다른 자산 손실을 메우기 위해 금을 매도하는 상황에서는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모멘텀 추종 투자자’들은 다른 자산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금의 본래 역할인 ‘통화 가치 하락의 헤지’ 기능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언제, 어떤 가격에서 투기적 수요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불확실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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