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인터넷은행의 대표 주자인 레볼루트와 몬조, 스털링 등이 ‘금융 슈퍼앱’으로 진화를 선언하며 대출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넘어야 할 ‘대출사업의 산’이 이미 또 다른 인터넷 은행인 아톰뱅크를 좌절시키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이들이 결제를 벗어나 대출사업 중심의 은행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레볼루트 등은 유럽 전역에서 수천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며, 결제, 해외송금, 카드 서비스 등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들 인터넷은행은 고객이 늘수록 수수료 수익과 예금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 덕분에, 전통 은행보다 훨씬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확보한 예금은 영국 중앙은행 예치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추가 위험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대출은 결제와는 전혀 다른 사업이라고 FT가 지적하고 나섰다. 특히 기업대출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신용심사와 자본 적정성, 부실채권 관리, 금융당국의 규제 등 복잡한 과제를 수반한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높은 비용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것. 이 같은 현실을 영국 최초의 앱 기반 대출 전문은행인 아톰뱅크가 보여주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는 물론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가 결제 기반을 넘어 대출과 자산관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디지털 플랫폼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통은행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리스크 관리와 자본 운용 역량이 결국 장기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FT에 따르면, 영국의 인터넷 앱(App-only) 은행 가운데 가장 큰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곳은 영국 뉴캐슬에 본사를 둔 아톰 뱅크다. 그러나, 이 아톰 뱅크는 약 6억 파운드(약 1조 1690억 1600만 원) 수준의 기업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해 인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인터넷 은행인 레볼루트, 몬조, 스탈링은 모두 수십억 파운드(수 조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핀테크 기업들은 영국에서 모두 비슷한 시기에 설립됐다. 하지만, 시장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가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결제 사업이 성장시키기가 매우 쉬운 사업이기 때문이라는 것. 레볼루트와 몬조, 스탈링의 핵심 사업이 바로 결제사업이다.
새로운 고객 한 명이 가입할 때마다 △각종 결제 수수료가 발생하고 △고객 예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확보한 예금을 영란은행(Bank of England)에 예치하기만 해도 안정적인 이자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추가적인 위험이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핵심 전략은 단 하나다.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한다는 것.
반면 아톰 뱅크 같은 은행은 다르다. 예금을 단순히 중앙은행에 맡겨두지 않는다. 대신 대출을 실행한다.
대출은 중앙은행 예치보다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문제는 영국 주택담보대출처럼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에서는 그 수익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즉, 대출 사업은 △심사 △리스크 관리 △규제 대응 △자본 관리 등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충분한 규모가 확보돼야만 대출 사업이 진정한 수익성을 낼 수 있다.
아톰 뱅크는 최근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53억 파운드(약 10조 3035억 1800만 원) 규모의 대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적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영국 전체의 1조7000억 파운드(약 3304조 9020억 원) 규모의 모기지 시장에서는 여전히 작은 플레이어에 불과하다.
아톰 뱅크가 느리게 성장한 것도 아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대출 규모는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결제 중심 은행들의 성장 속도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2025년 3월까지 1년 동안 아톰 뱅크의 이자수익은 4억4300만 파운드(약 8615억 5083만 원)였다. 이는 같은 기간 몬조가 기록한 수익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 레볼루트와 몬조 역시 대출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톰 뱅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FT는 강조했다.
물론 이들은 아톰 뱅크보다 유리한 점도 있다. 아톰은 고금리 저축예금만 취급한다. 하지만, 레볼루트와 몬조는 금리가 거의 없는 당좌예금을 대량 확보하고 있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이 훨씬 낮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년 수십억 파운드(수조원) 규모의 대출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출을 너무 빠르게 늘리면 시장에서는 “위험을 지나치게 감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긴다는 것.
실제 사례도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클라르나가 그랬다. 올해 초 이 회사는 소비자 대출 사업을 너무 빠르게 확대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경영진은 “신용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존 대형 은행들과의 경쟁이다. 레볼루트와 몬조가 공격적으로 대출금리를 낮춘다면, 로이즈 같은 기존 은행들과 가격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감독당국 역시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면밀히 감시할 것이다.
한때 시장에서는 오히려 아톰 뱅크가 더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대출 없이 수익을 내는 은행”이라는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FT는 밝혔다.
사람들에게 주거래 은행을 바꾸게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반면, 모기지나 저축은행은 고객 충성도가 낮기 때문에, 더 쉽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톰 뱅크의 낮은 기업가치는 이러한 판단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레볼루트와 같은 결제 전문 핀테크들이 대출 시장까지 진출한다면, 아톰 뱅크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지금까지 손쉽게 성장해 온 대형 핀테크들도 앞으로는 성장 속도에 대한 기대를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FT는 강조했다.
권선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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