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동네 이장 대통령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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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펄펄 끓는 용광로에 쇳덩이를 집어넣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야 할 판에, 불에다 쇠를 달구어 결만 두드리는 대장장이 노릇이나 하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의 말이 현재 진행형으로 와 닿는다. 여즈음은 눈을 뜨기가 두렵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최순실 게이트이야기다. “~한민국(큰나라=아리랑)”의 함성은 온데 간데 없고, “~~ 대한민국”. 패닉상태의 한숨소리만 들린다.

 최순실 게이트는 667년 중국땅 1/3의 고구려가 망해 광활한 땅과 인구까지 잃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구 절반이 죽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65만명의 젊은 남여가 노예로 끌려가고,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수백만이 죽은 비극과는 또 다른 차원이 망연자실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비극은 이미 예견돼있었다. 도쿄대의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는 한번의 대형재난은 3000번의 징후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야의 대통령후보 선출방식에 있다. 현행 여야의 대통령후보 선출방식은 영남이장호남이장뽑는 시스템이다. 동네 이장수준의 시스템으로 대통령을 뽑으니 비극과 실망은 재연될 수 밖에 없다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선출은 진성당원(당비를 내는 당원)70%, 여론조사 30%로 결정된다. 더구나 진성당원 지역편차가 너무 크다. 진성당원 34만명의 60~70%는 영남사람이라고 한다. 특히 전당대회 때 체육관에 투표를 위해 모이는 당원 대다수는 영남출신이라고 한다. 이명박 전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이렇게 만든 꽃가마 타고 청와대에 갔다.

민주당 역시 다를 바 없다. 호남출신 당원수가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선거인단 범위는 대의원 45%(현장 투표), 권리당원 30%(ARS 투표), 일반당원 25%(국민여론조사 15%·당원여론조사 10%)이다. 국민여론조사가 15%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양당의 당대표 선출 역시 다를 바 없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지역감정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할 수 밖에 없다. 영호남 정치인의 목소리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남이장이 권력을 잡으면 국가의 요직을 영남사람으로 채우고, ‘호남이장이 정권을 잡으면 호남사람 챙기기에 바쁘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의 힘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줄을 댈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기업에 취직을 해도 타지역 사람들은 고위직에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힘들다. 또 정권에 따라 해당지역은 낙수효과를 즐긴다.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지역 사람보다 수월하다.

최근 뉴스에 나오는 인물 대다수는 영남 특히 대구경북(TK) 출신이다. 박대통령은 물론 우병우 전민정수석, 안종범 전 정책수석, 김수남 검찰총장, 최재경 신임민정수석, 이경제 변호사, 심지어 김병준 총리후보까지... 소통령으로 비유되던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에는 ‘PK공화국이라는 소리가 파다했다.

사정의 핵심인 법조계만 보자. 현재 2급 이상자리 40%TKPK(부산.경남)가 차지하고 있다. 조선말 안동권씨 풍양조씨 세도정치가 무색하다. 정권에따라 검찰의 요직은 TKPK호남PKTKTK식이다.

1993년 이후 검찰의 6대 요직인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서울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대검 중앙수사부장(중수부장, 현재는 반부패부장공안부장·법무부 검찰국장 자리를 분석해본 결과 김영삼(YS) 정부에서는 PK출신이 다수였다. 5년간 법무부 장관 다섯 명과 검찰총장 네 명이 임명됐는데 그중 PK 출신이 다섯 명이었다. 대검 중수부장과 선거 사건 관리를 담당하는 대검 공안부장 역시 PK 출신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DJ) 정부 때는 호남 출신 일색이었다. 법무부 장관과 서울지검장이 일곱 차례, 검찰총장이 네 차례 바뀌었는데 거의 다 호남출신이었다. 장관 여섯차례, 검찰총장과 서울지검장에 두 차례 호남 출신이 중용됐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자신의 고향인 PK 출신들을 주로 6대 요직에 앉혔다. TK 출신이 그 자리에 임명된 경우는 세 번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는 TK 출신 장관과 민정수석으로 검찰을 장악했다. 김경한·권재진 장관은 경북고 동문이다. 권 장관은 장관이 되기 전에 청와대 민정수석도 지냈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는 더 심하다. 검찰총장은 물론 대검 중수부의 역할까지 떠안은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인사에서 지역색이 더욱 두르러졌다. 네 명의 지검장 중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TK 출신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TK출신이니 그럴만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특정지역 사투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들의 책임회피 역시 꼴사납다. 엊그제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들은 최순실사태와 관련, “난 잘 모른다고 합창을 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의 하나 문제는 공기업공화국이다. 공무원들의 퇴임 후 자리보전과 집권자의 보은성 인사와 맞물린 결과다. 중앙 공기업 기관이 350, 지방 자치단체의 공기업이 400여개에 달한다. 뿐만아니라 포스코와 KT, 국민은행 등 각종 민간 금융기관까지 집권자의 의지가 반영돼 인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은 집권하는 순간 3000여명에 대한 보은인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폐단은 도를 넘고 있다. 대한민국 지식인들 상당수와 학문과 후학양성에 몰두해야할 교수들까지 한자리 꽤차기 위해 줄서기에 바쁘다. 수만명이 밤낮없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형국이다. 연말까지 23개 공기업과 기관 CEO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점을 고려할 때 지금도 줄대기시즌이다.

차제에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이 나라는 영남과 호남의 나라가 아니다. 동네이장 수준의 대통령을 뽑는 시스템은 더이상 안된다. 진성당원을 지역별로 인구비례에 맞게 조정하고 반영비율도 낮춰야 한다

나아가 공기업의 민영화도 강조높게 추진돼야 한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은 강성노조와 철밥통을 양산할 뿐이다. 또 대한민국의 수재들이 공무원과 공기업의 철밥통을 지향하고, 지식인들이 기회주의자로 전락하는 시스템으로는 미래가 없다.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최근 한국의 공시열풍에 대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티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고 말했다. 동네 소꿉장난은 더이상 안된다.

shanj@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