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산증인'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 별세..향년 7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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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뉴스=유성용 기자] ‘정책 브레인’, ‘정보화 전도사’, ‘IMF 경제 사령탑’, ‘꾀 주머니등 여러 별명을 얻으며 우리나라 경제 IT 분야에 한 획을 그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

그는 암 투병 중에도 또 다시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

1943
8월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군산사범학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윌리엄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한양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
년 제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의 길을 걸었고, 24년 뒤인 1993년 제6대 노동부 차관에 올랐다. 이후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행정조정실 실장을 거쳐 1996년 제3대 정보통신부 장관,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에는 제2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IMF
위기 극복 과정에 큰 역할을 하면서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이끈 경제관료였다. 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3차부터 7차까지 다섯 번이나 참여했던 한국 경제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2002
8월에는 16대 국회 재보선에서 전북 군산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그해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경제공약을 주도했다. 이후 같은 지역에서 17, 18대 국회의원(민주당)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4·13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공동선대위원장 시절에는 한국은행이 경기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등을 직접 인수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를 제안해 주목받았다. 기업들에 대해서는 자금을 쌓아두지 말고 투자에 쓸 것을 촉구했다.

최근에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대한 대안을 전파하기 위한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지난해 9월에는 2년 임기의 대한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되며 경제 원로로서 활동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3년 전 발병한 췌장암과 투병하면서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부총리, 재경부 장관들과 만나는 자리에 참석해 조언을 쏟아내기도 했다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철회한 대안으로 강 전 장관이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
(71) 씨와 아들 문선(43), 딸 보영(42)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장지는 고향인 전북 군산 가족묘지다.

sy@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