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임질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

이지환 국군강릉병원 정형외과 과장, 국제관절염학회지 게재 논문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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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국제학술지 국제관절염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Rheumatic Diseases)(https://doi.org/10.1111/1756-185X.14025)에 세종대왕이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는 국내 젊은 의사의 논문이 실려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논문의 제목은 ‘세종대왕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까? 강직성 척추염의 가장 오래된 환자 증례(Did Sejong the Great have ankylosing spondylitis? The oldest documented case of ankylosing spondylitis)’이다.

이지환 국군강릉병원 정형외과 과장

논문의 저자인 이지환 국군강릉병원 정형외과 과장(32)은 논문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세종대왕의 삶을 들여다보며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세종의 업적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네스코에서는 세종의 믿을 수 없는 업적을 기리며 문맹률 감소에 기여한 단체에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고 있다. 세종은 정치, 법령, 규정, 예법뿐만 아니라 음악, 농학, 점술까지 관심 분야가 넓었다. 박연과 함께 타악기 편경을 만들고 장영실을 등용해 천문학과 공학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의 단점은 운동을 꺼려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았고, 결국 비만한 몸을 갖게 된 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의 큰 형 양녕대군은 빡빡한 세자 수업을 받으면서도 승마를 빼놓지 않았지만 세종은 비교적 한가한 시절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꺼렸다. 조선을 건국한 이씨 왕조는 말 타기를 즐겼다. 할아버지 이성계는 8필의 명마를 갖고 있었다. 그는 사냥이 취미였고, 아버지 이방원(태종)과 세종의 삼촌 이방(정종)도 사냥을 즐겼다. 반면 세종은 아들인 문종과 세조는 조선 시대 인기 스포츠인 격구를 사랑했다. 

저자는 이 점을 주목했다. 세종은 왜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심한 고질병을 앓지는 않았을까? 병 때문에 운동을 기피한 게 아닐까?. 연구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증상을 하나씩 찾아가며 시작됐다. 저자는 세종실록을 분석할 때 세종 시대의 의료 환경은 지금과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임질이라고 불린 질병과 현대의학의 임질은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병이다. 조선 시대에는 소변을 볼 때 찌릿한 느낌, 소변이 남아 있는 느낌, 아랫배가 불편한 증상 등을 통칭해서 임질이라고 했다. 이는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임질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세종 당시 임질은 현대의학의 방광염에 가깝다는 것이다. 방광염은 주로 대장균(Escherichia coli)에 의해 발생한다. 방광염은 저절로 좋아졌다가 무리하면 재발하기도 한다. 세종은 길이 좁아서 가마 대신 말을 탄 날, 대규모 군사 훈련에 참여한 날 증상이 악화됐다. 현대의학의 방광염 경과와 일치한다. 현대의학은 임질을 ‘임균(Neisseria gonorrhoeae)이라는 세균에 의해 생기는 병’으로, 임균은 대부분 성관계를 통해 전파된다. 조선 시대 진단에 초점을 맞추면 ‘세종은 성병에 걸린 왕’이 되지만, 증상에 집중하면 ‘세종은 대장균 때문에 고생한 왕’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런 오류를 피해 연구를 진행했다. 통증이 발생한 시기와 양상을 종합해 ‘세종은 강직성 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생겨 허리뼈가 대나무처럼 뻣뻣이 굳는 병’이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호소한 통증이 약 50회 가량 등장한다. 세종은 20대에 심각한 무릎을 호소했고, 30대에 허리 통증이 발생한다. 허리 통증이 심해 마음대로 돌아누울 수도 묵묵히 참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허리 통증은 내가 평생을 안고 가야만 하는 숙질(宿疾)이 되었다’고 고백한다(내가 궁중에 있을 때에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예(禮)는 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 : 세종 17년 4월 1일)

논문에 따르면 세종의 강직성 척추염은 23세 전후에 허리나 팔다리 통증으로 시작했다. 세종의 경우 22세 무릎 통증이 생겼다. 무릎 통증은 세종에게 강직성 척추염이 발생했다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세종의 허리는 굳어간다. 세종은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는 독특한 증상을 보였다. 이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들이 호소하는 특징적인 징후다. 오죽했으면 병 이름에도 ‘뻣뻣이 굳다’는 뜻을 가진 ‘강직성’이란 단어가 붙어있다. 실제로,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허리는 4cm도 늘어나지 않는다. 또 세종이 가장 많이 언급한 증상은 눈 통증으로, 이 증상은 40대부터 심해진다. 눈 증상은 주로 까끌거리며 따가운 양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증상 때문에 세종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을 걷기가 어려웠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렵다. 눈에 좋다는 온천에서 목욕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는 책 읽기가 수월할 만큼 좋아졌다 : 세종 23년 4월 4일) 저자는 ‘눈의 통증이 좋아졌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흔히 ‘세종대왕이 당뇨병을 앓아서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력이 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까끌거리는 양상의 눈 통증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세종의 증상을 강직성 척추염의 합병증 중 하나인 포도막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급성 포도막염(acute uveitis)은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50% 이상이 겪는 가장 흔한 합병증이다. 급성 포도막염은 까끌거리는 통증을 유발하고 어느 날은 눈 뜨기 힘들만큼 아프다가 갑자기 씻은듯이 좋아지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세종의 눈 증상과 꼭 맞다. 저자는 이같은 사료를 통한 연구를 바탕으로 세종의 질병이 강직성 척추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종대왕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세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국제학술지에서 세종대왕을 소개한 논문이 없었다.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에서 최초로 세종대왕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저자는 세종대왕을 세계학술지에 소개함과 동시에 연구에 이용한 조선왕조실록의 가치 또한 언급한다. 중국이나 태국 등 유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왕의 행적을 기록한 실록을 발간했으나, 조선만큼 방대한 양을 철저히 기록하고 정당의 이권에 따른 왜곡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기관을 설립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창규 기자 chang@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