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독도를 사실상 한일공동소유화한 김대중 정부의 외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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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나라가 망하는 게 외교다. 그런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상대국에 그것도 자신보다 강한 나라에 대해 “버르장버리 고쳐놓겠다”니? 이 발언은 인류 역사의 ‘실패한 외교사’로 기록될 만하다. 

속으로는 통쾌했다. 특히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江藤隆美) 총무청 장관의 1995년 11월 발언에 대한 화답격이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는 출범과 함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 '역사 바로세우기‘를 했다. 특히 1993년 3월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멋져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무라야마(村山)담화‘도 얻어냈다. 

그러나 ’버르장머리‘는 너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버르장머리‘ 대가는 처절했다. 1996년 시작된 한일 어업협정 개정 협상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 획정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가 맞물리면서 양국간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98년 1월 한일어업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물론 한일어업협정도 새로 채결해야할 상황이었다. 1977년 미국과 소련이 200해리 어업보존수역을 시행하자 일본 역시 200해리를 선포했다. 또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이 채택되자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도 정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였다. 일본의 금융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김영삼정부는 일본에 밀사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결국 한국은 국가부도(IMF체제)를 맞았다. 이어 ’문민정부‘도 막을 내렸다. 한일, 한미관계가 원만하였더라면 수백억 달러의 지불 보증으로 IMF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IMF체제를 벗어나는 최대 급선무였다. 일본의 외교는 고수였다. 김대중 정부는 일본으로 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그들의 술책에 돌이킬 수 없는 외교참사를 저지르고 말았다.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선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독도공동소유협상‘에 응한 것이다. 결국 1998년 10월 김대중 정부는 배타적경제수역협정에 따른 신한일어업협정에 가서명, 1999년 1월 22일 정식 발효됐다. 국회비준 당시 야당과 국회전문위원들의 반대에서 불구 비준했다. 


문제는 일본측이 주장하는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점이다. 독도와 오키도 섬의 중간지점이 아닌 울릉도와 오키도섬 중간 지점으로 설정하는 우를 범했다. 독도문제가 걸리니 독도를 아예 없는 섬으로 하고, 협정을 맺은 것이다. 더구나 울릉도와 오키도 섬의 중간지점으로 설정해도 신한일어렵협정의 경계선이 독도 동남방 33KM지점에 그어져야 하는데 무슨일인지 독도 북동쪽 위로 설정됐다. 독도를 사실상 한일공동섬으로 규정한 것도 한심한데 공동수역 경계선마저 이해못할 지점에 그어진 것이다. 특히 독도동북쪽에 위치한 대화퇴(大和堆) 어장까지 공동수역에 들어가게 됐다. 이곳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수심이 100~200m 세계 황금어장 중 하나다. 한심한 협상을 한 것이다. 

’독도비극‘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이 협상이 이뤄지기가 무섭게 본격적으로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독도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 때 이미 끝난 것이었다. 한일간에는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한일어업협정도 이뤄졌다. 일본은 과거 12해리 기준 한일어업협정을 논의하면서 독도문제를 거론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 문제는 없다”며 “일본이 독도문제를 계속 거론하면 ’한일협정‘을 아예 없던 일로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일본은 한국측 입장을 수용, ’한일어업협장‘에 조인했다. 결국 독도 문제는 1965년에 깔끔히 정리된 것이다. 이승만 평화라인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한일어업협정은 잠정 협정으로 유효 기간이 3년이다. 한쪽이 이의를 제기하면 재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대통령도 재협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극한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대통령은 2006년 일본이 독도에 대해 해양조사를 하겠다고 하자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의 시점이 울릉도가 아닌 독도"라며 강경한 입장을 발표, 이를 막았다. 또 당시 외교부 박희권 조약국장은 한일간 협상테이블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재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신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지않아 독도 불씨는 현재 진행형이 되고 말았다. 다만 사실상 김대중 정부가 독도참사를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무튼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고지도는 어디에도 없다. 예부터 울릉도 부속섬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독도는 울릉도로 부터는 87.4KM, 일본 오키도 섬으로 부터는 157.5KM 떨어진 섬이다. 

일본 기록에도 명확하게 한국땅으로 돼 있다. 우선 1877년 일본정부의 공식문서인 ’태정관지령‘에 ’독도=한국땅‘으로 돼 있다. 또 일본은 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비준을 위해 제출된 일본영역참고도에도 ’독도=한국땅‘으로 돼 있다. 이는 빼도막도 못하는 증거다. 

우리정부는 물론 독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이러한 명백한 증가가 있음에도 제대로 반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같은 증거를 제시하는 학자가 바보 취급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사가와재단(일본재단)은 연간 예산이 6000억 정도로 예산 절반 정도가 해외 연구기금으로 지원된다고 한다. 더구나 이 재단은 일제 강점기 만주와 한국으로부터 약탈해간 금괴로 만들어졌다하니 분통이 터진다. 세계 유수 싱크탱크, 유명대학, 많은 학자들이 사사가와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도 마찬가지다.

인하대 정태만 교수는 “샌프란시스코조약 당시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게 주려고 했다는 얘기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서 “그런 미국측 초안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해양법 전문가인 박현진 박사(런던대박사)는 “김대중 정부가 일본의 술책에 속아 분쟁의 씨앗을 뿌린 것은 크나큰 실수”라면서 “당시 해양법재판소 한국대표로 나가있던 고려대 박춘호 석좌교수가 ’어업협정은 영토 문제와는 관계없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정년퇴임 후 일본 서남학원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기도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실력파 국제법학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박현진 박사는 “국제법은 판례가 아주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없는 섬으로, 그것도 어로수역 경계를 독도 동남방 지점이 아닌 동북쪽에 그은 것은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또다시 ’독도=일본땅‘을 명문화하고 있다. 대다수 교과서에 위안부 그림자를 지우고, '독도=일본땅'으로 못박고 있다. 

우크라이나사태와 오버랩되면서 못내 개운치 않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 역시 독도문제가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폭탄돌리기‘는 더 이상 안된다. 정공법만이 문제해결의 ’첩경‘임을 알아두길 바란다. 

신한일어업협정을 파기 하고 새로 협정을 맺어야 한다. 국제법상 잠정협정도 체결한 뒤 이의없이 30년이 지나면 유력한 법적 근거로 원용될수도 있다. 1998년 협정을 맺은 점을 고려할 때 이제 6년밖에 안남았다. 심지어 독도 동북쪽 위로 경제선을 그어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일본에 더 유리할 수 있다. 6년 후에는 일본이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독도 소유권을 주장할 게 뻔하다. 자위대가 독도를 불법점유안한다는 보장이 없다. 상상만해도 끔직하다.

국제사회는 조폭보다 더 무서운 세계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 역시 보기 좋지 않다. 지도자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강해져야 한다. 

chang@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