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인덱스 펀드 등 패시브 투자의 비중이 60%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패시브 투자는, 펀드 매니저의 종목 선별 없이 시장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투자 방식.
이같은 패시브 투자 확대가 주가를 과도하게 끌어올리며 시장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밝혔다. 패시브 투자는 수수료 인하와 투자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그동안 지배적이었다.
하버드·시카고대 연구진이 “ETF 등의 투자가 주식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며 패시브 자금 1달러(약 1473.9 원)가 유입되면, 시가총액은 3~8달러(약 4421.7~ 1만 1791.2 원)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전체가 이같이 패시브 자금에 의해 끌려가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개별 종목의 가치 분석만큼이나 거시적인 자금 수급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채권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타깃 데이트 펀드’가 문제로 꼽혔다. 2024년 미국 연금 적립금의 64%가 이 상품에 투자된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정해진 비율로 주식을 매수하는 구조가 주가 상승 압력을 구조적으로 만든다는 것.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미국 증권사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들은 ‘농노제로 가는 조용한 길: 왜 패시브 투자는 마르크스주의보다 나쁜가(The silent road to serfdom: why passive investing is worse than Marxism)’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이 보고서가 패러디한 ‘The road to serfdom’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1944년에 출간한 정치철학 및 경제학 분야의 고전.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와 사회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결국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논문이다.)
번스타인의 그 보고서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패시브 투자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조 달러(한화 수천조 원)의 자금이 액티브 펀드(펀드 매니저가 기업분석을 통해 종목을 선별해 투자하는 적극적 운용 자금)에서 시장지수를 단순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로 이동했다. 이 흐름은 멈출 기미가 없다. 업계 단체인 투자회사협회(ICI)에 따르면, 미국 주식형 펀드가 운용하는 순자산의 최대 60%가 이런 패시브 상품에 들어가 있다.
번스타인의 그 보고서는, 당시에는 거래소 현장에서 화제를 모으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나온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 뿐일 것이다. 패시브 펀드를 애널리스트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식 선별 투자자(Stockpicker)에게 리서치를 판매하기 때문이다. 수년간 “패시브 투자가 시장에 해롭다”는 주장 역시, 그런 상품이 사라지면 자신의 연봉이 오를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인덱스 펀드 탄생을 이끌었던 한때의 ‘혁명적 신념’은 이제 상식처럼 여겨진다. 대부분의 액티브 운용사가 벤치마크 지수 수익률을 이기지 못하는 반면, 패시브 대안은 지수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수수료는 극히 낮다는 사실을 모르는 투자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패시브 투자가 정말로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비판자들의 문제 제기는 일리가 있다는 것.
시장의 사회적 기능은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곳으로 배분하는 데 있다. 그런데, 패시브 펀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무차별적 매수는 주가를 기업의 실제 이익과 괴리시킬 수 있다.
패시브 펀드에 맞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존재는 헤지펀드 같은 차익거래자들이다. 이들은 트래커 펀드의 거래 상대방이 돼, 가격을 다시 기초체력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 사이에서 특히 많이 논의되는 한 작업논문은, 이 차익거래자들의 효과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시브 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실제로 주가를 왜곡하고 거품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버드대의 자비에 가베익스(Xavier Gabaix)와 시카고대의 랠프 코이언(Ralph Koijen)이 쓴 이 논문은 ‘비탄력적 시장 가설(inelastic-markets hypothesis)’을 제시한다. (비탄력적 시장가설이란,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자본 유입·유출 이동이 주식 등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이론. 이는 투자자들이 자산 배분에 있어 유연한 대응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장 전체의 수요 탄력성 즉 가격 민감도가 작고, 소액의 자금 이동만으로도 가격이 크게 변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가설은 교과서적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과서에 따르면,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더라도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아야 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저자의 논문은 주식시장 수요가 이런 의미에서 ‘탄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비탄력적이어서 주가가 상승해도 수요가 크게 줄지 않는다. 그 결과, 신규 자금이나 채권 같은 다른 자산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1달러어치 주식을 매수하면 전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3~8달러까지 증가한다는 것이다.
가베익스와 코이언은 1993~2019년 사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특유(idiosyncratic)’의 자금 흐름을 분석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이는 뉴스 같은 다른 변수로 설명될 수 있는 자금 흐름을 제외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시장 구조 자체가 왜 비탄력적인지를 설명한다. 우선, 교과서에 등장하는 차익거래자들은 현실에서는 수가 적고 제약이 많다. 헤지펀드는 전체 주식 가치의 5%도 보유하지 못하고, 엄격한 리스크 한도를 적용받는다. 고객이 자금을 회수하면 포지션을 청산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고정 자산배분을 유지하는 펀드들이다. 예를 들어 자산의 80%를 주식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펀드에 현금을 넣는다고 하자. 주식의 총 발행량은 변하지 않지만, 수요는 늘어난다. 이 펀드는 다른 유형의 투자자로부터 주식을 살 수 있지만, 실제로는 투자자 집단 간 자금 이동이 크지 않다. (만약 수요가 탄력적이라면, 미래 이익 전망에 대한 믿음이 다른 집단들이 다르게 행동하며 거래가 늘어났을 것이다.)
결국 모든 유사한 펀드가 동시에 운용 규칙을 지키려면, 현금을 투자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적은 주식을 더 높은 가격에 사는 것 뿐이다. 이런 펀드야말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저축을 쏟아붓는 대상이다.
패시브 투자 거대업체인 뱅가드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인의 연금 적립금 가운데 64%가 ‘타깃 데이트 펀드’로 들어갔다. 이 펀드들은 시장 가격이 아니라, 은퇴 예정 시점에 따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정한다.
가베익스와 코이언의 분석이 옳다면, 이런 꾸준한 자금 유입의 매 1달러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미래 수익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주식시장 가치를 몇 달러씩 끌어올린다. 마르크스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안심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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