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금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을 사실상 바꿨다.
당초 "스테이블코인은 돈이 아니다"라는 강경한 부정론을 견지해온 신 후보자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에 대한 서면 답변을 통해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중심에 두되, 스테이블코인의 '보완적·잔여적 역할'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다.
"CBDC가 중심, 스테이블코인은 보완"
신 후보자는 "화폐에 대한 신뢰 유지는 여전히 핵심 요소"라며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이 디지털 통화 생태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가상자산 등 토큰화 자산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며 보완적·경쟁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중심 통화 수단에서는 배제하되, 디지털 자산 거래의 부수적 결제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인정하겠다는 '위계적 공존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 후보자는 특히 "예금토큰은 자금세탁 방지, 고객 확인과 같은 규제 준수가 용이하고 화폐의 단일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하며 CBDC·예금토큰 체계의 우위를 재확인했다.
BIS 시절 "교환 비율이 문제"라며 강경 부정
신 후보자의 이번 입장 선회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단일성과 가치 유지를 훼손하며, 자본 유출 및 통화주권 침해 등 신흥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일관되게 경고해왔다.
특히 지난해 8월 세계경제학자대회(ESWC)에서 신 후보자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외환 거래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지름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스테이블코인이 블록체인을 통해 달러표시 가상자산과 쉽게 교환되면서 막대한 자본 유출 통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신 후보자는 “스테이블코인에는 항상 '교환 비율'이라는 꼬리표가 따른다”고 강조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달러 스테이블코인 써클(USDC)의 가치가 1달러에서 0.88달러까지 폭락한 사례를 이같은 경고의 근거로 들었다. 시장에서는 이 발언을 신 후보자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부정론으로 해석해왔다.
청문회 앞두고 현실론 수용… '전략적 유연성'?
신 후보자가 입장을 바꾼 배경중 하나로, 급변하는 글로벌 디지털 통화 환경이 꼽힌다. 스테이블코인의 전체 시가총액이 계속 불어나고, 국내에서도 해외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때문에, 원화 기반의 결제 수단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CBDC 발행을 사실상 제한하는 정책 기조 속에,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부정하기 어려운 국제 환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적극 추진 중인 정치적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신 후보자의 이 같은 입장 선회는 향후 국내 디지털 통화 체계 논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부정적 신중론을 견지해 왔다.
'프로젝트 한강' 지속 추진… CBDC 강화 의지
신 후보자는 "은행과 핀테크 등 민간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지급결제 인프라를 고도화할 것"이라며 실증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이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시중은행이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해 유통하는 2단계 실증 사업이다. 신 후보자가 CBDC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점은 향후 예금토큰 확대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결국 신 후보자의 '입장 변경'은 CBDC 중심 체계를 핵으로 유지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그 외곽에 배치하는 '위계형 공존' 구도로 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 후보자가 스테이블코인의 혁신성은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에서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 모두 법적 기반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정책 방향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내놓은 이번 입장 변화가 정책 의지의 실질적 전환인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수사적 조율에 그치는지는 취임 이후 구체적인 정책 행보를 통해 판가름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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