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신용평가(Alternative Credit Scoring)’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달들어, 신용평가에 따른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융배제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거래 이력 위주의 신용평가에 대한 한계를 비금융 대안 신용평가 확대 적용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조되고 있다.
대안신용평가는 연체 이력·카드 사용액 같은 전통적인 금융 데이터 대신, 통신비·공과금·온라인 구매·소비패턴 등 비금융 정보로 신용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해 제도권에서 소외됐던 국내 사회초년생·주부·고령층 위주의 ‘씬파일러(Thin-Filer)’ 1280만명에게, 대안 신용평가의 확대 적용은 대출과 금리의 문턱을 크게 낮춰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발전으로 데이터 수집·분석 비용이 낮아지면서, 대안정보를 활용한 평가모형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이와함께, 개인정보 침해·알고리즘 편향·투명성 부재라는 도전과제도 부각되고 있다.
김용범 실장은 이달 1일부터 사흘에 걸쳐,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게시, “신용점수 1점 차이로 제1금융권 문턱과 고금리 시장의 경계가 갈리는 건 통계의 과학이라기보다 운영의 편의를 위한 단순화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신용등급은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규정하고, 한국 신용대출 시장을 “가운데만 휑하게 뚫린 도넛”에 비유했다. 1금융권(저금리)과 2금융권(고금리) 사이 중금리 구간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낡은 신용평가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며 “매일의 소비와 납부, 플랫폼 활동을 통해 만든 ‘삶의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구조를 만든 본인도 명백한 공범”이라는 고백도 더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6일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은행을 예금자 보호·구제금융이라는 공적 안전망에 기대고 있는 ‘준공공기관’으로 규정하고, “국가 면허 위에서 독점 영업을 하고 있다”며 “수익성에 비해 공공성이 지나치게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은 가장 비싼 돈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포용금융 확대를 강조했다. “포용금융은 금융기관의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계속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신용평가의 구조적 한계
현행 신용평가는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구축됐다. 대규모 부실 사태를 겪은 뒤 금융당국은 대출·카드·연체 이력을 통합 관리하는 신용평가회사(CB) 중심 체계를 정착시켰다.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으로 개인신용평점은 상환이력(21%), 부채수준(24%), 신용거래기간(9%), 신용거래형태(38%) 등 금융데이터 위주로 구성된다. 비금융 마이데이터 정보는 전체의 8%에 불과하다.
이 구조의 맹점은 뚜렷하다. 실직·휴직 같은 신용 상태 변화가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생기고, 금융거래 자체가 없는 사회초년생·주부·고령층은 사실상 평가 불가 상태에 놓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씬파일러는 전체 인구의 25% 이상인 약 1280만명으로 추산된다. 미국에서는 6200만명 이상이 이같은 금융이력 부족층으로 분류된다.
신용 인플레이션 문제도 있다. 국내 신용평점 900점 이상 차주가 전체의 47%(나이스 평가정보, 2024년 12월 기준)에 달하면서 점수만으로는 실질적 리스크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안신용평가의 국내 활용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장 열심이다. 카카오뱅크는 롯데멤버스·교보문고·카카오모빌리티·예스24 등 11개 기관 3700만건의 가명결합 데이터로 ‘카카오뱅크 스코어’를 개발했다. 도서 구매 이력·택시 이용 패턴·소액결제 등을 반영했다. 기존 심사에서 거절된 고객 대상 추가 대출이 누적으로 1조1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25세 미만 고객군에서 기존 신용평가사 대비 변별력이 30% 이상 향상됐다고 주장한다.
케이뱅크의 경우, 통신 3사 가입자 4800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이퀄(EQUAL)’ 모형을 도입했다. 시간대별 통화 패턴·금융앱 접속빈도·소액결제 비율을 통합 분석했다. 네이버페이 스코어도 병행해 활용하고 있다. 이용자 3명 중 1명꼴로 금리·한도 혜택이 부여되고 있다고 한다.
토스뱅크는 대부업체 신용데이터·계좌정보·카드정보·자영업자 매출정보를 결합해 대안신용평가를 하고 있다. 신한카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소비 행동 패턴·디지털 로그 데이터를 활용한 모델을 개발, 전문 개인신용평가업(CB) 진출도 준비 중이다. 누적 중·저신용 대출 9조6000억원을 공급했다고 한다.
시중은행중에서는 국민은행이 통신 3사 데이터를 반영한 신용평가 모델을 도입했다, 올해 중금리 대출 1조5300억원 공급이 목표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등도 신용평가 고도화 등을 통한 중금리 대출 확대를 검토중이다.
핀테크업체중 네이버파이낸셜은 스마트스토어 소상공인의 매출 흐름·단골 고객 비중·고객 리뷰·반품률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페이 스코어’를 개발했다. 이를 케이뱅크·에스비아이저축은행 대출 심사에 적용하고 있다.
대안신용평가의 해외 사례
중국 앤트그룹의 마이뱅크가 대안신용평가의 선두주자다.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알리페이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매출 흐름, 반품률, 고객 리뷰를 실시간 분석한다. ‘3-1-0 모델(3분 신청, 1초 승인, 0명 개입)’을 통해 중소 상공인 2000만 명에게 자금을 공급 중이다. 이 중 80%는 연매출 100만 위안(약 2억1332만 원) 미만의 영세기업이다. 자산이 아닌 현금흐름 중심의 대출을 하고 있다. 마이뱅크의 부실채권(NPL) 비율은 2% 이하로, 중국 평균 중소기업에 대한 NPL 비율(3.2~5.5%)에 비해 크게 양호하다.
홍콩은 빅데이터 기법과 소비자 행동분석을 신용위험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핑안 원컨넥트뱅크(Ping An OneConnect Bank)의 활용사례가 돋보인다. 이 은행은 무역정보 전문기업 트레이드링크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정부 전자거래서비스(GETS) 데이터를 확보해 무역신고서·세관 송장 등 영업 활동 데이터로 중소기업 차주의 리스크를 실시간 평가하고 있다. 소득증빙 없이도 대출 심사·승인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캐비지(Kabbage)와 렌딩클럽(Lending Club) 등이 대안신용평가에서 앞서가고 있다. 캐비지는 이커머스·간편결제·클라우드 회계 데이터 등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사회적 가치를 여신 기준으로 삼아 심사를 자동화했다.
렌딩클럽은 구글·알리바바·샘스클럽 등 파트너의 데이터와 전통 신용평가 데이터를 결합해 활용하고 있다. 대출규모는 연간 18억5000만 달러(약 2조6880억5000만 원. 2024년 기준).
또 업스타트(Upstart)가 “학업과 직업도 신용”이라는 모토로 잠재력 있는 청년층을 고객으로 선점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용평가 점수 대신, 대학 전공, 성적, 직업 이력 등 인적 자본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한다. 기존 신용평가 모델 대비 대출 승인율을 26% 높였다. 반면, 연체율은 유지하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내세우고 있다.
탤러(Tala)의 경우, 금융계좌가 없는 씬파일러를 대상으로 모바일앱 이용내역·위치정보·기기사용 패턴 등을 분석해 신용평가, 소액대출을 실행하고 있다. 전화 통화 빈도, 앱 설치 현황, 문자 메시지 유형 등도 본다.
익스페리언(Experian)의 경우, 공과금·통신비·임대료 납부내역 등을 분석해 인공지능을 활용, 미국 금융기관에 제공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조파(Zopa)가 혁신의 기수다. 자체 신용평가 알고리즘으로 프리랜서·소상공인에게 고객별 맞춤 대출 조건을 제시한다. 현재까지 약 130억 파운드(약 25조6969억7000만 원)의 대출을 공급했다.
인도는 크레딧만트리(Creditmantri)가 대표적 성공사례다. 통신 데이터·공공요금·전자상거래 데이터를 모델링했다. 60여개 금융기관과 파트너십를 맺고, 세금 납부·전기 소비 등 대안 데이터를 포함힌 신용정보를 구축했다.
“만능 해법은 아니다”
다만 대안 신용평가의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유럽연합이 자동화된 의사결정과 신용점수 산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대안 신용평가 활용이 자칫 차별이나 설명 불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데이터 수집의 적법성, 모델 검증, 설명가능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애플카드에서는 알고리즘 편향으로, 동일 신용조건의 여성에게 남성보다 낮은 한도가 부여된 사실이 드러났다. 유씨 버클리대 연구에서는 핀테크 대출 알고리즘이 흑인·라틴계에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저소득층은 대안 데이터 자체가 부족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디지털 격차’ 문제도 제기된다.
금융권에서는 “대안신용평가를 통해 개인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결국 본질은 저신용자에게 어디까지 낮은 금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도에 따른 차등 금리는 리스크 기반 가격 결정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은행 연체율이 2021년 0.21%에서 올해 3월 0.56%로 치솟은 상황에서, 금리 체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금융 시스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단기 수익보다 포용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장기 전략, 그리고 금융당국의 명확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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