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의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에게 맡기라”.
일부 기업의 임원들이 자신의 지식과 판단력을 무한 복제하는 ‘AI 디지털 트윈’을 업무에 도입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AI가 임원의 이메일·연설·인터뷰 등을 학습해 그 사람의 말투와 사고방식을 재현하며, 부하직원 응대·콘퍼런스 발표·성과 코칭 등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 AI 디지털 트윈은 임원 업무 시간을 최대 50% 절감시켜주고, 더 많은 직원에게 양질의 코칭을 제공할수 있게 해준다. 이 때문에 WSJ은 이를, 개인용 컴퓨터 이후 최대의 생산성 혁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언제 한 번쯤 자신과 똑같은 쌍둥이가 있어서 업무를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란 적이 있지 않느냐고 WSJ는 질문했다. 그런데, 일부 기업에서 소수 임원들이 바로 그 일을 실현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이들 임원은 자신의 AI 버전을 만들었다. 이는 미래 직장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의 생산성이 더 이상은 한 사람의 역량에만 국한되지 않게 됐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AI 시스템이 임원이 작성한 업무 이메일부터 연설문,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분석해 그가 어떻게 글을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지를 파악한다. 그런 다음 ‘AI 도플갱어’는 부하직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등 해당 인물의 지식과 소통 방식을 활용하는 다양한 업무를 대신 수행한다. 영상 기반 버전의 경우, AI 트윈이 콘퍼런스에서 직접 연설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 기업 그레이록 파트너스의 파트너인 리드 호프만은 자신의 디지털 트윈인 ‘리드 AI’를 주로 공개 행사와 미디어 인터뷰에 활용한다. 22년간 호프만이 쓴 책, 연설, 팟캐스트, 기사를 학습한 이 시스템은 2024년 출시 이후 75회 이상의 강연과 발표를 소화했다(단, 인간의 보조는 있었다)고 WSJ는 설명했다.
그 사례 중에는 두바이 콘퍼런스도 포함돼 있다. 여기서 이 디지털 도플갱어는 회의실의 대형 화면을 통해 프랑스어, 중국어, 힌디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리드 AI’는 74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나는 언어 하나밖에 못 하지만”이라고 호프만은 말한다.) 이 AI는 또한 공동 창업자인 벤 렐레스가 실시간으로 던진 영어 질문에도 답변했다.
자신의 디지털 도플갱어 덕분에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훨씬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라고 호프만은 말한다. “이 시스템이 격주로 투입될 때, 아마도 50%의 시간을 절약하는 것 같다”는 것.
디지털 트윈이 임원들을 일상적 업무에서 해방시켜 더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하게 할 잠재력이 있다고 지지자와 사용자들은 말한다. 디지털 업무 트윈이 개인용 컴퓨터 이후 가장 획기적인 생산성 배가장치가 될 수 있다고, 인적 자본 연구·자문 기관인 기업생산성연구소의 최고 전략 책임자 케빈 오크스가 작성한 12월 보고서는 결론 짓는다. “당신의 트윈이 아마도 업무의 절반을 처리하여, 당신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오크스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호프만은 10년 후에는 50명 이상의 직원을 둔 모든 기업이 고위 경영진, 사업 개발, 영업, 고객 서비스, 미디어 관계 담당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고도로 훈련된 가상 분신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10년 안에 호프만은 “많은 대기업이 일반 직원들을 위한 디지털 트윈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디지털 트윈은 직원들이 이 개념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상당한 난제에도 직면해 있다. 또한, 트윈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기업들이 직원을 디지털 복사본으로 대체하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소유권 문제도 있다. 디지털 트윈에 축적된 지식은 회사 소유인가?. 아니면 사람이 퇴사할 때 가져갈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일부 임원들이 트윈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트윈이 온라인에서 당신에게 응답하는 방식은 내가 직접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산업용 포장재 기업 그리프의 최고 인사 책임자 발라 사티야나라야난은 말한다. 전자 메시지로 소통하는 그의 트윈은 12월 출시 이후 약 3300명의 직원과 상호작용했다.
사티야나라야난의 AI 트윈인 발라봇(BalaBot)은 그의 공개 자료들, 즉 기사, 팟캐스트, 콘퍼런스 발언 등을 선별적으로 학습했다. “개인 이메일 기록, 기밀 인사 사례 파일, 직원 기록,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학습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프의 BalaBot 이용자들은 주로 임원과 관리자들이다. 저성과자 코칭이나 자신의 경력 개발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지침을 얻기 위해 이들은 사티야나라야난의 디지털 브레인을 활용한다.
그리프의 글로벌 학습개발 수석 매니저 덱스터 스트롱은 기대치를 계속 충족하지 못하는 팀원을 다루기 위해 AI 트윈이 제시한 세 가지 전략 중 하나를 사용했다. 매주 1:1 면담과 업무 재배치 가능성 등이 포함된 계획이었다. 그 팀원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서 자기 분야의 리더로” 변모했다고 스트롱은 말한다.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는 것.
퀀티엄 헬스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하처는 “기본적으로 나처럼 행동하도록” 2024년에 ‘버추얼 브라이언(Virtual Brian)’이라는 자신의 트윈을 만들었다고 WSJ는 밝혔다. 이 도구는 그의 리더십 관련 저서 등을 학습했다. 그의 디지털 분신이 그를 인터뷰해 여러 리더십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듬을 수 있게 했다.
퀀티엄 헬스의 임원 매니저 앨릭스 던컨은 최근 성과 평가를 준비하면서 Virtual Brian의 도움을 받았다(퀀티엄 헬스는 데이터 분석 및 AI 기업인 퀀티엄 그룹의 사업 부문이다). 트윈은 그녀가 두 건의 성공적인 고객 제안서 작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이를 축소 평가하는 바람에 자기평가가 낮게 책정됐다고 알려줬다.
Virtual Brian과 전자적으로 상호작용한 후, 던컨은 해당 항목의 자기평가 점수를 ‘양호’에서 ‘우수’로 올리고, 동료들을 이끄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도 추가했다고 WSJ는 설명했다. 던컨은 실제 하처와의 공식 평가 면담 때 더 자신감 있고 덜 스트레스 받는 상태였다고 말하며, 이는 “아마도 내가 받아본 가장 수월한 성과 평가”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AI 트윈에는 한계가 있다. 주요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인간의 감독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독 역할을 맡은 AI 도플갱어가 고용 규정을 잘못 전달하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트윈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법적 검토나 인간의 책임을 대체해서는 안된다”라고 온라인 중고품 판매 업체 빈티드의 선임 지식재산권 법무 담당 폴 주르시스는 말한다.
게다가 트윈은 한 사람의 의사결정 및 행동 방식의 핵심 논리를 반영한다 해도, 까다로운 소통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채용 플랫폼 에잇폴드 AI의 CEO 겸 공동 창업자이자 분사 스타트업 비벤의 아슈토시 가르그의 말이다. 예를 들어 Reid AI는 농담을 던진 후 가끔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고 호프만은 말한다.
AI의 고질적 문제인 환각(hallucination) 현상도 있다. Reid AI는 가끔 내용을 지어내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뭔가?” 같은 의견 질문에 완전히 틀린 답을 하기도 한다(바닐라라고 답했지만, 호프만은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민트 초코라고 한다. “데이터 부족으로 틀렸지만, 개선되고 있다”는 것.)
기본적인 오작동도 문제다. 2025년 봄, 켈리 모나한이 업워크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전무로 재직하던 당시, 업무 플랫폼 업워크가 그녀와 동료를 위한 디지털 휴먼을 생성했다. 업워크를 퇴사하면서 ‘디지털 켈리’라고 이름 붙인 그녀의 AI 복제본은 모나한이 AI와 미래 직업에 대해 강연하는 12월 콘퍼런스에서 약 200명의 호텔 업계 임원들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켈리가 “계속 말을 더듬으며 같은 대사를 반복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청중 사이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다”. 모나한은 즉시 디지털 도플갱어를 종료시켰다. “이래서 인간이 계속 개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AI는 아직 주인공이 될 준비가 안 됐다”.
한편, 모든 사람이 디지털 트윈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Reid AI를 연사로 제안받은 거의 모든 사람이 처음에는 호프만 본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마음을 바꿨는데, 예를 들어 “나에게 불가능한 장소나 시간에도 Reid AI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호프만은 말한다(그는 항상 자신의 연례 기술 업계 서밋에서는 직접 연설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리서치·자문 기업의 대표 조시 버신은 처음에 AI 트윈을 사내 전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저항에 직면했다. 비벤의 제품은 직원 개개인의 전문 지식, 이메일, 기타 승인된 업무 문서를 활용해 대형 언어 모델을 맞춤 설정함으로써, 예를 들어 그 사람 특유의 어투와 우선순위로 고객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
“모두가 패닉 상태가 돼 ‘내 이메일이 다 거기 들어가는 건 싫다’고 했다”라고 버신은 말한다. 그는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의료 검사 결과 같은 비업무 메시지는 가상 대체물에서 제외할 수 있고, 민감한 업무 문서도 비공개로 설정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약 50명의 직원들 사이에서 회의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객 지원 관련 부책임자 찰스 킨지의 추산에 따르면, 일부 직원들은 디지털 트윈을 주당 평균 5시간 미만으로 사용한다. 반면 킨지 자신은 고객 미팅 준비, 트렌드 분석, 프로젝트 업데이트 등에 매일 적어도 몇 시간씩 트윈을 활용한다고 한다.
디지털 트윈은 고용의 본질에 관한 더 근본적인 질문들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퇴사할 때 AI 분신을 가져갈 수 있는가? 이전 고용주가 디지털 형태로 그 사람의 전문성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가?
미래에는 “퇴사 직원들이 자신의 디지털 트윈과 관련 데이터·지식을 남기는 대가로 보상을 받는 상황도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빈티드의 주르시스는 말한다. 모나한은 업워크에서 이 문제를 예상했다. 그녀는 업워크 가상 분신을 보유한 누구든 퇴사 시 그 외모와 개인 전문성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단, 트윈이 보유한 회사 고유 업무 지식은 회사가 소유한다.
모나한이 지난 11월 독립적인 ‘미래 직업 연구자’로 업워크를 떠난 이후, 업워크는 더 이상 어떤 형태로도 그녀의 디지털 도플갱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변인은 WSJ에 밝혔다. 그러나 전 동료들은 그녀가 업워크를 위해 수행한 연구 결과는 계속 활용할 수 있다. 모나한은 곧 출간될 자신의 저서와 기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상 대체물을 재훈련시켰다.
물론, 트윈은 모든 AI에 공통되는 근본적인 우려도 제기한다.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직원을 대체하기 위해 AI 트윈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리서치 기업 가트너의 분석가이자 미래 직업 전문가 토리 폴만은 “명확한 동의와 거버넌스 없이 그런 일을 하면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한다.
초고속으로 진화하는 AI 시대, 언젠가 Reid AI가 진짜 리드를 대체할까? “그럴 수도 있다”라고 호프만은 말한다. 그러나 다른 인간들처럼 “나도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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