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비(KB)금융그룹이 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과 손잡으면서, 국내 금융권의 AI 생태계 구축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챗봇이나 업무 자동화를 넘어, ‘AI 인프라 주권’을 누가 선점하느냐를 두고 주요 금융지주들과 대형금융사들이 일제히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KB금융, 리벨리온과 ‘한국형 AI 동맹’
KB금융그룹은 국내 대표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과 ‘전략적 업무 제휴 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KB금융의 AI 전환을 가속화하고, 소버린 AI 시대에 걸맞는 한국형 AI 금융 인프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리벨리온은 상용 서비스 공급·적용 경험과 AI 에이전트 등 복잡한 추론에 최적화된 차세대 제품을 기반으로, KB금융그룹과 금융 현장 적용 경험을 축적한다는 계획이다. 기업 가치가 3조 4000억원에 달하는 리벨리온은 최근 국민성장펀드 직접 투자 1호 기업으로 선정된 AI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다.
KB금융은 지난 2022년 KB인베스트먼트를 통한 리벨리온의 시리즈 A 투자로 협력 관계를 맺은 바 있다. 이후, 2023년에는 리벨리온을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KB스타터스’로 선정하며 협업을 확대해 왔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투자 관계가 기술 협력으로 확장된 첫 사례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KB금융은 리벨리온의 가능성을 믿고 함께해준 파트너”라며 “이번 협약은 국산 AI 반도체가 금융권에 뿌리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 ‘1인 1 AI 에이전트’…현업 중심 AX 선언
신한금융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의 100% 출자로 국내 최초의 금융AI 전문회사인 ‘신한AI’를 설립했다. 신한 AI는 자체 개발한 AI 투자자문 플랫폼 ‘네오(NEO)’와 시장리스크 조기감지 시스템을 통해 △심사, △이상탐지, △컴플라이언스 등 금융의 다양한 영역으로 본격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올해 전사적 현업 중심의 인공지능 전환(AX)를 선언하고, AI 기반의 업무 방식 변화와 고도화된 AI 에이전트 도입을 목표로 세웠다. ‘1인 1 AI 에이전트’를 목표로 현업 실무자 중심의 실행 체계를 구축하고, 실제 영업 현장에 적용 가능한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다. 경쟁 지주들이 2026년 조직개편에서 AX 관련 조직을 정비한 것과 달리, 신한금융은 작년 하반기 이미 관련 조직을 선제적으로 재구축한 바 있다.
하나금융, 독자 AI 연구소…‘내재화’ 전략
하나금융은 그룹의 AI 연구 조직인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을 중심으로 AI 금융혁신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금융그룹 중 독자적 AI 연구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하나금융이 유일하다. 외부 테크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그룹 내부에서 AI 역량을 길러내는 ‘내재화’ 전략이 하나금융만의 차별 포인트라는 것.
하나은행은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업여신 심사의견 작성 자동화를 추진 중이다. 이는 여신업무 중 하나인 기업여신 심사의견 작성을 자동화해 단순 반복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우리금융·NH농협금융, 조직 개편으로 ‘AX 체제’ 전환
우리금융지주는 AI 기술의 발전과 초고령사회 진입, 제도·정책 변화 등 새로운 환경 변화의 물결이 금융산업 전반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그룹 경영목표를 ‘미래동반성장을 주도하는 우리금융’으로 설정하고, ‘생산적금융·AX 선도·시너지 창출’을 3대 중점 전략 방향으로 수립했다. 우리금융은 AI가 이끄는 변화 속에서 디지털자산까지 아우르는 신사업 확장도 선언했다.
NH농협은행은 2026년 1월 1일부로 AX, 생산적 금융 강화, 고객 중심 종합금융체계 확립 등 미래 금융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AI 전략, 데이터 분석,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를 통합한 ‘AI데이터부문’ 신설이다.
비은행 대형사 미래에셋·한화생명의 승부수
비은행 계열 대형 금융사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미래에셋생명이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며 보험과 투자를 결합한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본격 나섰다. 김재식 미래에셋생명 부회장은 “2026년은 보험업의 한계를 넘어 한국형 버크셔 해서웨이 모델을 안착시키는 변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리벨리온 투자를 시작으로 AI 인프라 등 혁신 기술 포트폴리오를 지속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에셋그룹은 AI·디지털자산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해 ‘테크&AI 부문’을 신설하고 AI와 웹3 기반의 신성장동력 창출을 목표로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들은 해외로 시선을 돌렸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6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산하 인간중심AI연구소(HAI)와 산학협력을 체결하고 AI가 금융에 미칠 중장기적 영향을 연구 중이다.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3사는 공동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한화 AI센터(HAC)를 설립하고, 투자전략·보험 모델링·리스크 관리 도구를 강화하는 차세대 AI 설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2026년 AI 기반 플랫폼과 고객 중심 ‘라이프케어 복합금융 플랫폼’을 성장축으로 삼아 질적 성장을 추진한다.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보험을 넘어 고객의 일상이 연결되는 생태계, ‘라이프케어 복합금융 플랫폼’이 미래의 삼성생명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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