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 이유는 ‘페트로달러’ 같은 ‘D램달러’ 현상”

FT, “AI 반도체 수출호황에 코스피는 두 배갔는데, 환율은 외국인의 리밸런싱 등으로 1500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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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한국의 금융위기 당시 수준인 15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누리고, 삼성전자·하이닉스가 시총 1조 달러(약 1529조 9000억 원) 클럽에 오르는 등 ‘수출 강국’의 면모를 뽐내는데도 이렇다. 

해외 이코노미스트들이 이 현상을 ‘근본적인 수수께끼’로 규정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그 원인으로 첫째, 외국인 주식 리밸런싱 매도와 둘째, ‘페트로달러’와 비슷한 ‘디램(DRam)달러’현상을 꼽았다. 

즉, 코스피가 급등하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비중을 초과하지 않으려는 글로벌 펀드들이 사상 최대인 790억 달러(약 120조 8226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는 것이다.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꿔 본국으로 송금하면, 원화는 당연히 약해진다. 여기에 더해, 삼성·하이닉스 등이 수출로 번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글로벌 사업 확장과 해외 자산 투자에 사용하고 있어 원화 강세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이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하면서도 정작 통화 가치는 위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역설은, 수출 실적을 어떻게 국내 경제로 환류시킬 것인가라는 정책적 과제를 정부에 새롭게 던지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원화 저평가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원화 약세가 반전되는 순간, 삼성·하이닉스 등 수출 기업들의 ‘역(逆)송환 러시’가 촉발돼 급격한 평가절상이 올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FT는 AI가 한국의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이끌고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아시아 최약세 통화 중 하나라고 최근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의 원화가 달러 대비 수십 년 만의 최저 수준이라는 것. 반도체 수출 급증과 주식시장 호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래되고 있다. 원화 강세를 예상했던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원화는 올해 아시아 최악의 통화 중 하나로 꼽힌다. 달러 대비 4%가 하락했다는 것.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충격에 노출된 필리핀 페소, 인도 루피, 인도네시아 루피아 정도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은 미국 AI 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 덕분에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다. 1분기 한국 경상수지 흑자는 738억 달러(약 112조 8918억 6000만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순이익은 각각 283억 달러(약 43조 2424억 원), 224억 달러(약 34조 2272억 원)를 기록했다.

수익의 이같은 호황은 삼성전자 주가를 지난 1년간 400% 이상, 하이닉스는 무려 970% 끌어올렸다. 두 기업은 모두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529조 4000억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여건이라면 통화 강세가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원화는 1달러당 1529.4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2008~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라고 FT는 설명했다. 미국외교협회(CFR)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수요 급증의 가장 눈에 띄는 수혜국 중 하나가 여전히 위기 수준의 환율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이 하락세는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달 원화가 “경제 펀더멘털에 대비해 과도하게 약세”라고 밝히며, 필요시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화 약세의 이유를 분석가들은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한국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특정 지역투자에 대한) 과잉 집중을 피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둘째, 반도체 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을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한국 주식을 순매도 기준 사상 최대인 790억 달러(약 120조 8226억 원)어치 팔아치웠다. 알비씨 캐피털마켓의 아시아 매크로 전략 디렉터 아바스 케슈바니는 “한국 주식 시장이 완전히 폭발했다”며 “10월부터 지금까지 코스피가 두 배가 됐다”고 말했다. 기준이 되는 MSCI 지수의 한국 비중 상향 속도가 코스피 상승을 따라가지 못해, 많은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 특정 국가나 기업에 비중이 초과되는 것을 피하려고 주식을 팔고 있다고 케슈바니는 설명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익을 달러로 유지하는 것도 원화 약세에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지적했다. 수출업체가 해외 수익을 본국에 송환할 때, 본국 통화는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대형 한국 기업들은 점점 더 글로벌화되는 사업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외화로 보유하고 있다고 에스케이증권 글로벌 사업 한성원 본부장은 말했다.

이 현상을 ‘DRam 달러’라고 세처는 명명했다. 한국의 DRam 메모리 반도체 제조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에 대해, 산유국들이 막대한 달러 수입을 미국 자산에 재투자하는 ‘페트로달러’에 비유한 것. 수출업체들은 원화가 더 약해질 것이라고 느낄 경우, 달러를 원화로 전환하기를 꺼린다고 분석가들은 덧붙였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높은 에너지 가격, 그리고 △원화와 상관관계가 높은 엔화의 약세도 원화에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바클레이스 외환·이머징마켓 매크로 전략 책임자 미툴 코테차는 말했다.

그러나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이익이 이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상회할 것”이라며, “반도체 판매 호황 덕분에 2026년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이 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원화가 강세로 전환할 경우, 대규모 송환 러시가 일어나 달러 대비 큰 폭의 상승 반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알비씨의 케슈바니는 예측했다.

원화, 그리고 또 다른 반도체 수출국 통화인 대만 달러 모두 절상될 것이라고 주피터 자산운용 아시아 주식 인컴팀의 투자 매니저 샘 콘라드는 내다봤다. “어떤 촉매가 될지, 언제 시작될지는 모르겠지만, 경제 펀더멘털을 보면 두 통화 모두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FT에 말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