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한국은행은 발행주체를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은행권에 지분 50%+1주’이상을 줘야 한다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포함된 각국 중앙은행간 협력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거시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BIS는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될 경우, 국채 매입 확대로 인한 재정적 이점보다 은행 예금 이탈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과 신용공급 위축이 더욱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BIS는 그 대안으로,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토큰을 하나로 묶는 ‘통합원장(Unified Ledger) 구축을 제안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교과서에서 화폐는 △교환의 수단, △가치의 저장 수단, 그리고 △계산의 단위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화폐는 거대한 신뢰의 게임이다.
사람들이 화폐로 거래하고, 저축하고, 계산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지폐는 그저 종잇조각이고, 동전은 단지 합금 덩어리일 뿐이다.
화폐 대부분은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화폐의 일부는 중앙은행의 부채인 ‘지급준비금’ 형태다. 훨씬 많은 부분은, 은행이 키보드 입력 한 번으로 대출과 예금을 만들어내면서 생성된다. 이 신뢰 게임이 작동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단일성(singleness). 한 은행에 있는 1달러는 다른 은행에 있는 1달러와 같은 가치를 가지며, 미국 연준이 발행한 1달러 지폐와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둘째는 이전 가능성(transferability). 달러는 은행, 개인, 기업, 정부 사이를 거의 마찰 없이 이동한다.
셋째는 탄력성(elasticity). 화폐 공급은 필요에 따라 조정된다. 평상시에는 은행이 대출을 늘리거나 줄이며 비교적 차분하게. 위기 시에는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이 쏟아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체계에는 자연스러운 것이 전혀 없다. 국제 경제학자 네트워크인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이는 △은행의 중앙은행 유동성 접근권, △예금보험, △은행 자본 규제 등에 의해 유지되는 제도적 장치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상황이 변하면 이 장치도 좋든 나쁘든 적응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금은 디지털 혁신—역대 어느 때보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변화—이 이 체계를 관리하는 이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는 CEPR 보고서에서도 다루어졌다.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의 새롭고 유일한 별도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 등과 달리, 발행사가 특정 기준 자산에 대해 가치를 유지하겠다고 보증한다.
법정화폐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가치 기준 99.4%은 달러에 연동돼 있다고 BIS는 밝혔다. △엘살바도르에 법인을 둔 테더가 발행하는 유에스디티(USDT)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서클의 유에스디씨(USDC)가 이를 주도한다(둘 다 은행은 아니지만, 서클은 은행 설립에 대한 조건부 규제 승인을 받았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미 국채, 역레포(Reverse Repo. 중앙은행이 국채를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단기 자금을 흡수하는 공개시장운영 수단), 은행 예금으로 뒷받침된다. 테더는 일부 고수익 준비자산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총 가치는 3000억 달러(약 459조 9900억 원)를 넘어서며, 이는 미결제 국채 잔액의 약 1%에 해당한다.
여전히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가상자산 거래에 쓰인다. 결제를 매끄럽게 하고 금융 중개를 더 경쟁적으로 만드는 다른 여러 용도도 확인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스마트 계약과 결합하면, 길고 복잡한 변호사·은행 체인을 거칠 필요 없이 결제와 정산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기존 방식보다 더 빠르고 저렴한 국경 간 결제도 가능하다. 가상자산 거래 외에, 점차 인기를 얻고 있는 또 다른 용도가 있다. 자국 통화의 신뢰도가 낮은 신흥국에서 달러 노출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로 만드는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아직은 아니다“. 교환 수단으로서의 쓰임새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계산 단위로서의 정체성은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 단일성도 결여돼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종종 1달러에서 벗어나곤 했다(비록 그 폭이 크지는 않았지만).
2023년 서클이 현금을 예치해 두었던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을 때, USDC는 잠시 88센트까지 떨어졌다. 오늘날 서클은 741억 달러(약 113조 5730억 7000만 원) 규모의 준비자산 중 123억 달러(약 18조 8522억 1000만 원)를 매우 크고 안전한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탄력성 또한 의문스럽다고 CEPR 보고서는 지적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지원 없이는, 급격한 환매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예금보다는 머니마켓펀드(MMF.수시입출금식 초단기 채권형펀드)에 더 가깝게 만든다.
다른 위험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블록체인상 불법 활동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BIS는 지적한다(리서치 업체 체이널리시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루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는 것.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신흥국의 개인과 기업에는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국 중앙은행에는 반갑지 않다. 이들은 시뇨리지(화폐의 가치와 발행 비용 간 차익)를 잃고, 통화정책 수단의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자국 국채에 대한 유용한 추가 수요원이 된다. 하지만, 코인에 코인런이 발생할 경우 걱정거리도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가? 최근 전 세계 정책 당국이 쏟아내는 법안과 제안들 사이에
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어느 곳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자를 지급하도록 허용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자 지급을 허용하면, 은행 예금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되기 때문이다(다만 내년 발효되는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유통사가 리워드를 지급하는 것은 허용한다). 모든 규제안이 액면가 환매를 요구하지만, 얼마나 신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코인이 단기 유동자산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이들은 요구한다. 예를 들어 영란은행은 준비자산의 30%를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70%를 단기 국채로 보유하도록 제안했다.
서클의 최고경영자 제러미 앨레어는 이러한 완전 담보 방식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화폐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은행 화폐는 이런 준비자산으로 뒷받침되는 비율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다만 유럽연합에서는 최소 비율을 은행 예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중앙은행 시설 접근에 관한 규정도 제각각이다. 영국은 최종 대부자 기능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이를 전통적 은행에만 국한할 방침이다(다만 연준이 비은행 발행사에 결제·정산용 계좌를 제공할 가능성은 있다). 유럽연합은 중앙은행 지원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로 만드는가? 발행사들은 분명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은행들(그리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아마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 이것들이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을 더 확산시키느냐다.
답은 아마 ‘그렇다’일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다만 CEPR 저자들은, △프로그래밍 기능과 △기존 금융기관의 뒷받침·평판을 결합한 ‘토큰화 은행예금’이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화폐 신뢰 게임이 계속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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