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결제’ 역풍에, 美 비자·마스터카드의 글로벌 금융패권 흔들

이코노미스트, “50% 독점이익은 끝날 듯....세계 GDP 2.6% 위축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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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그리고 △예금토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까지 본격화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각종 간편결제 플랫폼 역시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유럽과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이 자국 중심의 결제 네트워크를 강화하거나 독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지정학적 도구로 금융을 무기화하는 ‘경제 외교’를 본격화하자, 이에 대응하는 ‘소버린 결제’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에따라, 미국의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지배하던 글로벌 결제생태계가 파편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송금 속도가 느려지고 △비용이 증가하며 △금융 시스템 간 상호운용성이 떨어져, 사기 및 자금 세탁 방지가 어려워지고 세계 경제 성장률이 최대 2.6% 추락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지난 6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재미슨 그리어 대표는 브라질의 즉시결제시스템인 ‘픽스(Pix)’를 비판했다. 비자·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기업들에 불공정한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다. 이에 미국은 브라질에 이달부터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 다시우바는 “픽스는 브라질의 성과다. 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권력에 비판적인 룰라뿐 아니라, 그의 정적인 우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조차 “픽스를 내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신 그는 픽스를 미국에 대항하는 국경 간 결제 인프라와 연계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브라질 필스는 2020년 출범 이후 5년만에 이용자 1억7500만명을 넘겼다. 2024년에만 640억건의 거래를 처리, 비자·마스터카드 거래량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브라질 성인 93%가 매일 픽스를 쓴다.

이 사례는 국제 금융의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21세기형 경제 국정운영(economic statecraft)”이라고 부른 전략 아래, 달러와 미국 경제에 대한 접근이 “더이상 무조건적이지 않다”는 기조가 확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여러 나라가 이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국제 금융 시스템은 지역별·국가별 시스템으로 쪼개지고 있다. 이런 분화는 결제부문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제 시장의 미국계 양대 기업인 비자와 마스터카드에게 골칫거리다.

지난 1월,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장 오로르 랄루크는 “적대적인 미국이 결제 인프라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유럽에 자체 대안 구축을 촉구했다. 몇 주 뒤 영국 은행장들은 런던에서 회동해, 비자·마스터카드에 대항할 영국판 결제망 구축을 논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역시 “디지털 결제는 우리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라이프의 존 콜리슨에 따르면, 서구 주도 결제시스템에 대한 우려는 과거에는 미국과 관계가 불편한 나라들에 국한됐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국제결제 인프라 접근이 끊긴 이후, 자체 메시징 시스템(SFPS)과 카드망(Mir)으로 전환했다. 중국 역시, 공공 주도 사업과 알리페이·위챗페이 같은 민간 대기업 확장을 통해 국경 간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달러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이제 정책 결정자들은 결제 인프라를 독립성 확보의 더 현실적인 경로로 보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중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쉬가오는 지난 5월, “중국이 국경 간 위안화 결제 확대보다 ‘국제 결제 채널 확보’와 ‘위안화 결제망의 세계적 확장’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예외적 사례가 아니다. 코넬대 교수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미국으로부터의 다변화는 거의 모든 나라 정책 결정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한다.

‘자체 시스템 구축’은 국경 간 결제 다변화를 원하는 나라들의 선택지 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몇년간 지연됐던 여러 프로젝트가 속도를 내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유로 결제를 위한 ‘단일유로결제지역(SEPA)’은 현재 4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유럽 은행·핀테크 연합체는 네덜란드의 아이디얼(iDeal) 등 각국 즉시결제시스템을 통합하는 디지털 지갑 ‘베로(Wero)’를 지원하고 있다. ECB는 2029년까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유로 출시도 목표로 한다.

또 다른 대안은, 미국의 결제망으로부터 다른 초강대국의 결제망으로 옮기는 것이다.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에 따르면, 중국은행은 최근 수 십개 국을 자신의 국경 간 거래를 위한 디지털 위안화 시스템에 추가했다. 지난 3월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 벨기에 기반으로, 미국이 지배적 영향력)의 경쟁 시스템인 중국의 국경간은행결제시스템(CIPS)은 하루 평균 9200억 위안(약 202조 2436억 원)의 자금을 처리해, 전년 동월 대비 20% 늘었다. 데이터 제공업체 에프엑스씨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4월에는 하루 거래량이 1조 2000억 위안(약 263조 796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 번째 선택은, 국제 프로젝트 대신 양자 협정을 맺는 것이다. 인도의 큐알코드 기반 결제시스템인 유피아이(UPI)는 현재 9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추가 가입국도 늘고 있다. UPI의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엔피씨아이 인터내셔널의 리테시 슈클라는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 그리고 각국의 자체 시스템 구축 지원이라는 풍부한 로드맵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브랜드는 각국이 자국의 국내 책무를 이행하고, 자체 국가 의제를 추진할 수 있는 주권을 갖도록 돕겠다는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여전히 대다수 결제가 미국 결제망(혹은 미국이 접근 가능한 망)을 거칠 것이다. 일부 통화의 유동성 부족으로, 다른 통로의 거래량이 제한될 수 있어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화폐의 혁신으로 소매 결제 다수가 기존 채널을 완전히 우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기적으로는, 교수인 프라사드가 지적하듯 픽스·UPI 같은 국가 결제시스템을 연계하는 양자·다자 협정이 상당한 자금 흐름을 기존 카드·환거래은행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결제 업계의 강자들에게 타격이 될 수 있다. 

비자·마스터카드의 국제 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에서 ‘소버린’ 시스템이 부상하면 두 회사의 50%를 넘는 영업이익률은 잠식될 수 있다. 최근 연차 보고서에서 두 회사 모두 , 각국의 자국 결제시스템에 대한 ‘특혜성’ 대우를 사업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실적이 견실함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다소 미온적이었다는 것. 2023년 이후 이어진 주가 상승세는 최근 1년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했다.

비자의 글로벌마켓 대표 올리버 젠킨은 각국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해 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지난 5월 비자는 2027년 문을 열 폴란드 기술센터를 포함해 유럽 인프라에 5억 유로(약 8520억 9500만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에는 중국 유니온페이와 협력해 중국 내 실시간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마스터카드도 지정학적 변화로부터 사업을 지키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유럽 사업 대표 켈리 데빈은 2025년 “유럽을 위해 운영되는 유럽 결제망이 이미 존재한다. 마스터카드가 그것이다”라고 썼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스터카드는 프랑스에 2억 5000만 유로(약 4260억 4750만 원)를 들여 데이터센터 3곳을 추가로 짓고 있다(기존 유럽 내 12곳에 더해).

소버린화 흐름은 카드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국경 간 결제 진전을 관찰해온 국제기구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이런 분절화로 인해, 지(G)20이 2020년 설정한 국제결제 목표—특히 더 빠르고 저렴한 해외송금—달성은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립스키가 지목하는 더 심각한 위험은, 각국이 결제 주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 시스템들이 서로 호환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 사기와 제재회피를 늘리고 세계 경제에도 해가 될 것이다. SWIFT가 후원한 보고서는, 현재 흐름이 지속될 경우 금융 분절화로 2030년까지 전 세계의 국내총생산(GDP)이 2.6%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한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은 결제 주권의 대가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