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카카오를 비롯해 네이버, 토스 등 핀테크 업체들과 금융업계가 관련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제화가 이뤄지면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자산 지갑에서 결제·송금·정산까지, 실제 서비스에 필요한 기반을 미리 깔아두려 움직이고 있다.
카카오, 국내외 연합전선 구축
가장 적극적인 곳은 카카오그룹이다. 카카오·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는 동남아 슈퍼앱 그랩, 태국 금융지주 에스씨비엑스(SCBX), 교보생명, 보난자팩토리 등과 디지털자산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최근 맺었다.
그랩과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과 지역 확장 전략을, SCBX와는 해외 결제·송금 서비스 개발을 각각 협의한다. 교보생명과는 올해 3월부터 개념검증(PoC)을 이어오고 있고, 보난자팩토리와는 지난해 4월 공동 서비스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인프라 기업과의 연결고리도 넓혔다. 지난 7월 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 인터넷 그룹과 협약을 맺은 데 이어 22일에는 디지털자산 인프라 업체 파이어블록스와도 손을 잡았다. 유통·보관·결제 인프라 구축 방안을 함께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기술 검증도 병행 중이다. 카카오페이는 이달 9일 기존 카카오페이머니 지갑에 스테이블코인 등 온체인 자산을 담고 송금·결제·정산하는 실증을 마쳤다. 약 4300만명이 쓰는 지갑 환경에서 대규모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카카오뱅크는 은행 수준의 보안과 규제 요건을 적용해 지갑 연동과 안정성을 검증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15일에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이용자가 정한 한도 안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결제·정산하는 ‘에이전틱 결제’ PoC도 마무리했다.
카카오그룹은 검증된 지갑 기술을 컨설팅과 묶어 국내 제휴 기관에 보급한다는 구상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일상에 자리 잡으려면, 국가와 산업의 경계를 넘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네이버는 두나무, 토스는 ‘유통 동맹’
네이버는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의 결합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해 11월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두나무를 100%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했다.
네이버페이의 결제망과 두나무의 지갑·유통 기술이 결합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발행·결제로 사업을 넓힐 여지가 생긴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이버벤처스는 올해 1월 미국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기업 레인(Rain)의 2억5000만달러(약 3409억 2500만 원) 규모의 시리즈 씨(C)에도 참여했다.
다만 변수가 남아 있다. 양사는 지난 7월 주식교환 예정일을 9월 30일에서 12월 31일로 미뤘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승인 등 인허가 절차가 남은 데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내용에 따라 진행 결과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공시했다.
토스는 발행보다 유통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은행과 캐피탈사, 이커머스 등을 아우르는 발행 컨소시엄을 꾸려 사용처를 먼저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7월에는 이더리움 레이어2 옵티미즘, 프라이버시 솔루션 업체 서니사이드랩스와 MOU를 체결하고 3개월간 기술검증에 들어갔다. 금융기관이 결제·정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지, 고객확인(KYC)·자금세탁방지(AML) 요건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검증 대상이다.
시중은행과 증권가도 움직인다. 케이비(KB)금융은 발행부터 결제·정산, 해외송금까지 잇는 통합 검증 체계를 구축했다. 우리금융은 기술과 운영 역량을 내부에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두나무·비트고 등과 협력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블록체인 기업 비토즈와 토큰증권 청약대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검증을 추진 중이다.
당정합의는 ‘10월’ 넘어갈 듯…발행 주체가 관건
제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을 조율 중이지만, ‘9월 중 당정 통합안 발의’ 목표는 넘길 것으로 보인다. 최대 쟁점은 발행 주체다. 은행이 지분 과반(50%+1주)을 갖는 컨소시엄을 유력 대안으로 보는 쪽과 핀테크 등 비은행에도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쪽이 맞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은행 중심 컨소시엄을 우선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의 타 회사 지분 15% 제한과 거래소 대주주 지분 규제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내 통과 가능성이 50% 이하이며 2027년 상반기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해외에서는 소파이가 자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마스터카드 정산에 적용하고, 비자가 리프와 손잡고 100여개국에서 스테이블코인 연동 카드를 내놓는 등 실사용 사례가 늘고 있다.
권선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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