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마녀사냥식 시기와 질투는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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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절대 인수한다고 말하지마(조중건)” “내가 미쳤냐(조중훈)”
 “아니 인수한다고 한거요?(중건)” “어떻게 거부하냐?(중훈)”

1969년 초. 대한항공의 창업주 조중훈이 박정희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에 오가면서 동생과 나눈 대화다. 조중건 전 한진부회장의 자서전(창공에 꿈을 싣고)에 따르면 “그분(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걸어 나오는 형의 모습은 시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중건은 형에게 “겁이 나서 이야기도 못하셨소?”라면서 계속 다그쳤다. 그런 동생에게 형은 “그럼 네가 가서 노(NO)라고 해봐!” 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1962년 설립한 대한항공공사는 27억의 부채에 프로펠러기 7대, 제트기 1대를 가지고 있었다. 한진의 임원들도 “베트남에서 번 돈을 모두 부실 항공사에 쏟아붓게 생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훈은 임원들을 향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대통령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달랬다. 최근 3세 갑질 논란을 빚어 곤혹을 치르는 대한항공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들 형제는 처음부터 회사이름도 한진(韓進:한민족의 전진)으로 지었다.

러나 지금 대한항공은 ‘대한민국의 망신’이라는 비판과 함께 ‘상표권반납’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2014년)과 최근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 조전무의 오빠 조원태 사장의 한 할머니에 대한 폭언과 폭행(2005년), 이명희 여사의 ’갑질‘과 일가의 무관세 외국상품 밀반입 의혹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항공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더욱 그렇다. 조중훈 회장은 1945년 고향인 인천에서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따라 받은 돈과 저축한 돈을 합쳐 트럭 한 대를 구입해 무역업과 수송업을 하는 한진상사를 창립했다. 트럭한대로 시작한 회사는 1950년 화물트럭 30대, 화물운반선 10척 규모의 운송전문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함께 차량과 화물운반선 모두 국가에 징발 당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했던가?. 어느 날 경인가도를 달리던 중훈은 차가 고장 나서 쩔쩔매고 있는 외국 여성을 발견, 주저 없이 내려 한 시간 반 수리해주고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어느 날 그 여성은 남편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남편은 바로 미8군사령관이었다. 사령관은 그에게 미군에서 쓰고 폐차되는 차량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곧이어 조중훈은 1956년 7만달러짜리 미군부대 화물운송 계약도 땄다. 그에게는 또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퀴농 상공을 날고 있었다. 항만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그의 머리에 ‘번쩍’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화물선 30척이 짐을 실기 위해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역장비와 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진은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미군 군수품과 수송을 맡아 1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재벌 반열에 올라선 것도 이때다. 1967년에 대진해운, 1968년엔 한국공항과 한일개발(전 한진중공업)을 세웠다. 그해 9월에는 인하공대까지 인수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어 1969년 대한항공공사까지 떠안은 한진은 한강의 기적과 함께 성장가도를 줄곧 달렸다. 대한항공은 오늘날(2017년 기준) 161대 항공기를 보유하고, 국내 13개 도시를 포함, 전 세계 43개국 125개 도시를 취항하는 세계적인 항공사 반열에 올라섰다. 

조중훈은 1920년 부친 조명희 모친 태천즙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조명희는 종로에서 포목상을 했다. 1930년대에 도산해 자녀들이 태어날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조용한 성격의 첫째 조중열은 한일개발 부회장을 지냈고, 둘째 조중훈은 대한항공창업주가 됐다. 동생 조중건 역시 대한항공 부회장을 맡았다. 조중훈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김정일 여사와 결혼했다. 이들은 조현숙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 등 4남1녀를 뒀다.

아들 조양호 역시 묵묵히 오늘날의 대한항공을 키워왔다. 그는 1973년 전 교통부 이재철 차관의 장녀로 서울대 미대를 나온 이명희와 결혼했다. 조중훈과 이재철이 한 모임에서 아들 딸 얘기를 하다 사돈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직경영으로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등극시켰다. 아버지 조중훈 창업주로 부터 엄격한 교육으로 검소함과 성실함, 그리고 프로정신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그러나 부유와 풍유 속에서 자란 3세는 다른 것 같다. 정직은 ‘거만’, 성실은 ‘갑질’로 변색된 느낌이다. 그들 눈에는 상위 0.1%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가 당연한 특권이었던 모양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부사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 서던캘리포니라 대학 경영대학원 MBA, 조원태는 고려대 경영학과, 여동생 조현민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서울대경영대학원를 나오는 등 학력도 남부러울 게 없다. 

2015년 11월 열린 한진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그룹은 선배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존재하며 이들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대 회장님의 길을 따라 한진그룹은 계속 전진할 것"이라며 "더욱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국가와 고객에게 헌신해 더욱 더 사랑받는 한진그룹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재벌들의 ‘갑질’은 정도가 심하다면 비판받고, 법을 어기면 벌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만 유독 ‘갑질 논란’이 심한 건 아닌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재벌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은 아무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 특히 ‘가족경영’이라는 말만 들어도 터부시하는 것은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다. 더구나 대한항공은 비교적 정경유착과 먼 기업이지 않는가?

마녀사냥식 시기와 질투는 경계해야한다. 세계 잘 나가는 기업 대다수는 가족경영기업이다. 포드, 월마트, 나이키, 보쉬 등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약 37%, 전 세계 기업의 80%가량이 가족경영기업이다. 미국의 경우 가족기업들이 고용 창출의 78%,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상장기업의 30%나 된다. 독일은 100대 기업중 67개, 주식회사의 70%가 가족경영기업이다. 일본 역시 상장사 40%가 가족경영이다. 에릭슨과 ABB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산하에 거느린 스웨덴 왈렌버그 그룹은 5대째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대한항공의 철저한 반성과 전화위복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