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식, 美는 버블- 韓·日·臺는 펀더멘털 대비 헐값”

이코노미스트, “PBR이 미국은 5배↑, 동북아 3국은 3배↓. 삼성·Advantest·TSMC 등 저평가”

인공지능(AI) 관련 투자의 무게중심이 미국에서, 한국·일본·대만 등 동북아시아로 이동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미국 내 AI 관련 주식과 증시는 매우 고평가된 상태라는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AI 열풍 속에서 닷컴 버블 정점 수준이라는 것.

반면, 한국의 삼성·일본의 어드반테스트(Advantest)·대만의 티에스엠씨(TSMC) 등 동아시아의 AI 주식은 실적 개선과 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가장 싼 AI 시장’으로 분류했다. 예상 이익 대비 주가(Forward P/E)가 SK하이닉스는 8배로, 마이크론(13배)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 따라서, 한국 등 동북아 AI주식들은 거품 붕괴시 하락폭이 미국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AI 거품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한 가지 사실이 이때 특히 두드러진다. 바로 주식이 매우 비싸다는 점. 이는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AI 대표 종목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시장 전체에 적용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주가 평가에 널리 쓰이는 지표인 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CAPE·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 ratio. 최근 10년 평균 실질이익으로 계산해 장기 밸류에이션 판단에 사용) 지수에 주목했다. 이는 기업의 주가를 장기적인 이익 추세와 비교하는 방식. 이 기준으로 보면 미국 대형주 지수인 S&P500이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고평가돼 있었던 것은, 과거 닷컴 버블 정점에서 뿐이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동북아시아를 살펴보면 흥미롭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일본·한국·대만의 주식시장에도 AI 열풍은 확산했다. 세 나라 모두 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삼성, 대만의 TSMC 같은 대형 기업뿐 아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까지 랠리에 동참했다.

실제로 일본 닛케이225 지수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종목 중 하나는 반도체 테스트 장비 업체인 Advantest다. 이 회사의 주가는 2022년 말 챗지피티 출시 이후 약 800% 급등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AI 열풍 역시 기업 실적 개선이라는 기초 체력에 일부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 12개월 동안, 일본·한국·대만의 이익 성장률은 전 세계 평균 상장기업보다 더 높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동북아 주식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향후 1년 예상 이익 기준으로 보면, 일본·한국·대만 주식은 전 세계 평균보다 싸다는 것. 특히 미국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다른 가치 평가 지표, 예컨대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보더라도 그렇다. 이들 시장은 더욱 저평가돼 보인다. 세 나라의 평균 기업은 장부가치의 3배 미만에서 거래되는데, 미국은 5배 이상이기 때문. AI 기업을 저렴하게 담고 싶은 투자자라면, 동북아가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시장이 가장 눈길을 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한국 주가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려 왔다. 이는 취약한 지배구조와 복잡한 재벌 구조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반영한다. 한국 주식은 평균적으로 장부가치의 1.4배라는 초라한 수준에서 거래된다.

이로 인해 흥미로운 대비가 나타난다. AI 수요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부족 속에서 SK하이닉스 주가는 올해 220% 이상 급등했다. 이는 미국 아이다호에 본사를 둔 경쟁사 마이크론과 비슷한 상승률이다. 하지만, 마이크론의 수익성은 훨씬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론은 예상 이익의 13배, SK하이닉스는 8배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이달 10일,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 증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고평가가 아니다. 집중도(concentration)다. 일부 소수의 기술주가 폭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나머지 경제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장 전체의 운명이 하나의 이야기, 즉 AI에 과도하게 묶이고 있다.

닛케이 지수에서 상위 5개 종목(이 중 4개가 AI와 연관)은 현재 지수 가격 기준 가치의 36%를 차지한다. 이는 2019년의 24%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대만의 타이완 가권지수(臺灣加權指數.TAIEX·Taiwan Stock Exchange Capitalization Weighted Stock Index)에서는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의 53%를 차지한다. 2019년의 30%에서 급증한 것. 

그 결과 대만과 한국 증시는 편중된 구조가 됐다. 역사적으로도 매우 집중도가 높은 미국 증시보다도 더하다.

투자자들도 이런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 지역에 대한 투자 판단이 자주 바뀌는 모습에서 드러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동북아 증시는 삼성이나 소프트뱅크 같은 대형주 영향으로 미국보다 변동성이 약간 더 크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일본·한국·대만의 30일 평균 실현 변동성은 미국보다 29%나 높았다. 이는 2020~2024년 평균 격차(6%)와 비교하면 훨씬 큰 수치.

만약 AI 거품이 꺼진다면, 아시아 주식도 타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주가 수준은,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상적인 밸류에이션으로 되돌아갈 경우, 일본·한국·대만은 하락 폭이 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AI 관련 종목뿐 아니라 시장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식이 이토록 비싸다는 사실은 더욱 불안하다. 투자자들이 AI 혁명에 대한 낙관론을 표현하기 위해, 거품 수준의 주가를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다. 동쪽을 바라보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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