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코리아의 ‘자존심’, 침몰하는 통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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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서비스는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제공되고 국민 전체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양질의 서비스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돼야 할 필요 내지 공익이 인정된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2일 참여연대가 통신 정책 주무부처였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통신요금 원가 산정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날 통신업계에서는 한숨 소리로 가득찬 하루였다. 통신업계에 대한 원가공개 판결이 내려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반올림 사건과 관련,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 작업 환경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이다.
 
참여연대는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이동통신사 원가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통신사들의 영업상 비밀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동통신사가 약관 및 요금 인가 신고를 위해 제출한 서류와 심사자료를 공개하라"며 참여연대가 공개를 청구한 자료를 전부 공개하라고 판단했다. 2심도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 국민으로부터 정보공개 요구를 받은 공공기관은 비공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공개해야 한다"며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개 대상 범위를 원가 산정을 위한 사업비용과 투자보수 산정근거자료 가운데 영업보고서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영업통계 등으로 한정했다. 영업보고서 가운데 인건비나 접대비, 유류비와 같은 세부 항목, 이동통신사가 콘텐츠 공급회사나 보험사 등 제3자와 체결한 계약서 등은 "영업전략 자체가 공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했다. 공개 대상 시기도 2005년부터 2011년 5월까지 2·3세대 통신 서비스 기간으로 제한을 뒀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필자는 자본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본다. 상품에 대해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혁신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 혁신을 통해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아도 원가공개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원가로 산정할 수 없다. 혁신은 혁신을 낳고, 또 혁신을 낳고, 부를 창출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의 아이폰이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국가가 된 것은 이러한 혁신문화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강압적으로 통신비인하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3세대(3G) 이후 한국의 통신분야의 기술혁신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셋째, 대법원이 강조한 주파수 얘기도 설득력이 약하다. 주파수를 공짜로 통신사에 배분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부는 경매제를 통해 주파수 할당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천문학적 돈을 내고 주파수를 할당받았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통신비 원가를 공개하는 나라가 있는 지 묻고 싶다.  

넷째, 이러한 포풀리즘은 원가절감으로 이뤄져 부작용이 속출할 우려가 있다. 주가 유지 등때문에 통신사들은 투자를 줄이고, 비용절감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이미 통신사들은 투자감소에 이어 이미 값싼 통신장비를 무차별 도입하고 있다. 4G 이후 중국산 화웨이 장비도입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감청과 해킹 등 보안에 무방비라는 지적에도 불구 “그건 난 모르겠다”는 식이다. 특히 5G서비스를 앞두고 화웨이 장비를 대거 도입할 태세다. 미국의 중국산 통신장비 수입금지 정책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양질의 통신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통신산업에서 기업가 정신이 식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통신사별로 원가가 다르다는 점이다. 가입자가 적어 원가가 높은 사업자는 경쟁사보다 통신비를 높게 받을 수 없다. 

일곱째. 통신사들의 이익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을 보면 SKT 8.7%, KT 5.8%, LG 6.8%에 그쳤다. 

여덟째, 한국의 통신요금은 OECD의 ‘2015 디지털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34개국 중 27번째를 기록, 8번째로 싼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양질의 서비스를 고려하면 더 저렴한 편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젊은이들의 소감은 “미래공상 도시에 온 느낌”이라는 게 공통적이다.  와이파이가 어딜 가나 공짜로 팡팡 터지고, 통신서비스가 전국 어디가나 가능하고, 지하철요금 등 교통비가 너무 싸고, 버스 환승서비스까지 가능하며, 커피숍과 음식점 등에서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테이블에 놓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괜찮고, 밤에도 치안이 안전하고, 먹거리가 다양하며 물과 반찬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에 깜짝 놀란다.
 
무엇보다 이들의 색다른 감동은 와이파이와 통신서비스를 꼽는다. 지하철은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높은 산에서도 먼 들에서도 통신은 물론 인터넷이 초고속으로 이뤄지는 데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가장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그동안 84년 TDX교환기 개발과 96년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등 통신기술에 대한 혁신을 거듭해온 결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IT코리아‘는 사라지고, 평준화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공약과 함께 통신요금인하가 이뤄져 기업가 정신과 혁신문화가 퇴색되고 있다. 급기야 원가공개판결까지 이뤄졌으니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판결이 2005∼2011년 이동통신사들의 손익계산 및 영업통계 자료 등에 한정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소송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이미 참여연대 측은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 통신요금과 관련해서도 원가 자료 공개 요구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발표한 '2018년 경제전망' 자료에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올해 3.0%, 내년은 2.9%로 제시했다. 이는 직전인 올해 1월 전망치와 같은 수준이다. 한국경제는 20여년 가까이 선진국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0위권 국가로 까지 올라섰다가 다시 뒷걸음질 친 지 오래다. 청년실업은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한국은 어느새 기업가정신보다는 노조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큰 나라가 되었다. 정권 실세들 역시 운동권과 시민단체 참여연대 출신들로 체워져있다. 청와대 참모진은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해서 운동권 출신이 17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재벌타도를 외쳤던 신민단체 출신이 많다.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안경환 법무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기식 금감원장 등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다.   

물론 보수기득권 세력과 재벌중심의 경제도 문제가 많다. 가진자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온 측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극과 극은 아니다. 구더기 때문에 장독까지 깨서는 안된다. 시장경제 근간이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통신사들은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자존심이다. ‘동네북’은 더욱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 후퇴한 나라에게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