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 칼럼] “전시(戰時)의 상업(商業)은 전쟁(戰爭)이요. 평시(平時)의 상업은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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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규 데이터뉴스 대표

전시(戰時)의 상업(商業)은 전쟁(戰爭)이요. 평시(平時)의 상업은 전쟁이다.” 

조선말 개화사상가 서유견문의 저자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 선생이 한 말이다. 전시에는 이순신 같은 장군이 있어야 하지만 평시에는 국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인이 최고라는 얘기다. 인류역사와 자본주의 본질을 이처럼 정확히 꿰뚫어본 이도 드물다.

지난 1일 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에 야유회를 다녀왔다. 우연찮게 하산 길에 유길준성생의 묘가 보였다. 지금까지 묘지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면서 존경이라는 표현을 써온 사실이 부끄러웠다

선생만큼 삭풍의 한 복판에 살다간 사람도 드물다. 1856(철종 7)에 태어나 일본의 한국병합을 지켜본 후 곧 1914년에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구당은 1881년 신사유람단에 참가, 근대문물을 눈으로 확인한 당시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일본의 문명개화론자인 후쿠자와(福澤諭吉)가 경영하는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수학했다. 이어 1884년 가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미국유학생이 됐다. 그해 겨울 갑신정변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학업을 중단하고 유럽 각국을 순방한 뒤 188512월 귀국했다. 고난의 시작은 이 때부터였다. 김옥균·박영효 등과 친하다는 이유로 개화파의 일당으로 간주되어 체포됐다. 겨우 극형을 면하고 1892년까지 연금생활을 해야했다. 이 때 쓴 책이 서유견문(西遊見聞)’이다.

그의 세상을 보는 시각은 남달랐다. 1985년 출판된 이 책에서 입헌군주제의 도입, 상공업 및 무역의 진흥, 근대적인 화폐 및 조세제도의 수립, 근대적인 교육제도의 실시 등을 주문할 정도다. 이후 갑오개혁의 이론적 배경이 됐다. 하지만 1896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친일내각이 붕괴되고 친러내각이 수립되자, 일본 망명길에 올랐다. 그렇다고 친일파는 아니었다. 일진회의 한일합방론에 정면으로 반대했으며, 국권상실 후 일제가 수여한 남작의 작위도 거부했다.

선생이 태어날 즈음 세계문명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서양은 산업혁명 이후 문명사를 하루가 다르게 새로 쓰고 있었다. 일본도 그 영향을 받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 쪽으로 남하가 여의치 않자 동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유럽은 이를 막기 위해 대리전전략을 세웠다. 조선과 일본을 근대화시켜 러시아 남하를 막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서양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공한 배경이다. 반면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반대의 길을 걸었다. 더구나 아관파천으로 친러정책을 택했다. 결과는 구제불능의 나라였다. 미국은 일본과 카스라-테프트 밀약을 맺고,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합병토록 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을 합병한 뒤 만주까지 올라가 러시아 남하저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지금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도덕과 양심이 우선이다. 일본은 한국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판결을 내리자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5일 미국 뉴스통신사인 블룸버그통신 인터뷰 등을 통해 일하기 어려운 나라로 비난했다. 심지어 일본은 한국의 조선업계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은 세계무역기구(WTO) 룰위반이라며 WTO 제소를 추진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독도를 먹기 위해 국제사법제판소를 사실상 접수했다. 소장은 일본인이고 재판관 등도 상당수가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한다.

한마디로 나쁜 나라. 일본의 양심변호사 100여명이 논평을 통해 일본정부를 비난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피해자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 간 합의는 징용공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한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설명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들은 2007년 중국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재판상 권리가 상실됐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점, 일본 정부 측도 앞서 그와 유사한 입장을 밝혔던 점 등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국제사회는 철저하게 이 지배하는 조폭과 같은 세계다. “도덕과 양심은 개나 주라. 우리는 과거사에 대해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비교하곤 한다. 철이 없다. 독일이 일본과 달라서 사죄를 했겠는가. 유태인이 세계 경제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사죄를 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태인만큼 강하면 일본은 벌써 백번 사죄하고, 배상금도 지불했을 것이다. 일류 역사에서 남의 나라에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한 적이 있는가. 독일만 예외다. 근세만 보자. 미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칼 등이 식민지 국가에 대해 사죄한 것을 보았는가. 도덕과 양심만 논하다가는 독도 역시 일본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냉엄한 세계다.

따라서 위안부와 강제 징용문제 모두 일본에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준다 해도 받지 말자. 대신 우리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자. 무엇보다 나라를 빼앗긴 국가 책임이 크다. 특히 한일협정으로 받은 돈으로 포스코 같은 회사를 세워 경제기적을 이룬 만큼 기업들의 출연금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국부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기업인을 존경하고 많이 키우자. 이들이 바로 평시의 이순신장군이다. 그러면 그들은 평시의 전쟁터에서 회사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나게 싸울 것이다.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 그것이 이다.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받는 길은 경제강국이다. 일본경제는 훨훨 날고, 대한민국 경제는 추락하는 한 사죄와 배상은 더 멀어져갈 것이다. 목만 아플 뿐이다.

chang@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