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로 촉발된 무역전쟁에서, 미국은 질 수밖에 없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꺼내든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 정책이 오히려 미국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FT는 간판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Martin Wolf)의 최근 칼럼을 통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는 이름의 상호 관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괴상한 무역정책 제안일 것”이라며 “‘무역전쟁은 좋고, 이기기도 쉽다’는 트럼프의 장담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무역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트럼프가 바라는 것은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은 패배하는 결과라는 것.
이어 FT는 “트럼프는 중국을 상대로 승리하기는커녕, 미국의 국제적 신뢰만 추락시킬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결코 무적이어서가 아니다. 거대하고, 유능하며, 결연한 중국같은 경쟁자를 상대로 세계적 지위유지를 위해 필요한 자산들을 미국이 스스로 내던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은 중국 수입품에 145%, 중국은 미국 제품에 125%의 관세를 각각 부과 중이다. 사실상 무역 봉쇄 상태다. 중국은 희토류 등 전략물자 수출 제한으로 추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브라질, 인도,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이 이미 중국과의 무역 비중을 미국보다 크게 늘린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은 동맹국들의 반발만 살 수 있다. 미국이 무역·안보를 엮어 제3국에 대중국 압박을 요구해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트럼프 정부의 불안정한 정책은 동맹국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는 동맹국 캐나다와의 관계까지 깨뜨리며 ‘거래 우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변덕은 외교·경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의 갈등 이후 자유당 정부를 재선시키며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모색 중이다.
이와관련, FT는 “무엇보다도, 미국은 이제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 ‘거래적 접근’만 추구하는 미국은 항상 더 나은 조건을 찾으려 한다”면서 “제정신인 나라이면 이런 파트너에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미래를 걸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인구는 중국의 1/4이지만, 그간 미국은 높은 생산성과 문화·정치적 영향력으로 중국을 압도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민의 고통 감내력이 미국보다 강하다고 믿고 있다. 공급충격을 겪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수요 감소에 대비할 여력도 충분하다. 중국에게 무역전쟁은 주로 수요 충격이지만, 미국에게는 공급 충격이다. 수요는 대체가 가능하지만, 공급 부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의 법치주의 훼손, 과학 연구 억압, 이민자 배척 등으로 핵심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FT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보라. 법치를 보복의 수단으로 바꾸려 하고, 정부를 해체하며, 정당한 정부의 토대를 이루는 법을 경멸한다”며 “과학 연구와 미국 대학의 독립성을 공격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계와 이민자들을 적대시하며, 의학과 기후과학을 부정하고, 무역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푸틴을 젤렌스키보다 선호하며, 미국 주도의 글로벌 질서를 지탱해 온 동맹과 협력 제도를 경멸한다”면서 “이러한 모든 것이 2021년 1월의 의회 폭동을 수용한 정치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치와 헌법 대신 부패한 족벌자본주의로 대체하려는 미국은 중국보다 잘할 수 없다. 단순히 거래만 추구하는 미국은 동맹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세계는 중국과 경쟁, 그리고 협력할 수 있는 미국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미국은 그 어느 쪽도 잘하지 못할 것이라고 FT는 진단했다.
FT는 “결론적으로, 미국은 원하는 거래나 중국에 대한 승리를 얻지 못할 것”이라며 “백악관이 이 현실을 인지하게 되면 트럼프는 무역전쟁에서 부분적으로 후퇴하면서도 ‘승리’를 선언하고 다른 이슈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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