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제 글로벌 금융의 안전지대 아닌, 위험 진앙지”

미 이코노미스트, “5배나 비대해진 사모펀드·헤지펀드 등에, 트럼프식 혼란이 겹쳐 ‘세계 금융위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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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자본의 도피처로 통했던 미국 금융이 불안정의 진앙지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이자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나라가 지금은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존 은행을 밀어내고 등장한 대형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은 막대한 규모로 급성장했으며, 금융 시스템의 중심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과 제도적 충돌은 이러한 새 금융 구조에 큰 압박이 돼, 향후 위기 시 대응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최근 경고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 따르면, 미국 금융 시스템은 현재, 사상 최대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아폴로, 블랙스톤, 케이케이알(KKR) 등 미국의 3대 사모펀드, 그리고 헤지펀드, 트레이딩 전문 기업들이 기존 은행권을 제치고 금융 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지난 10년간 사모펀드 3사의 자산 규모는 2.6조 달러(약 3576조 8200억 원)로 무려 5배 이상 증가했다. 대형 은행들의 같은 기간 자산 증가율(50%)을 압도하는 수치다. 

새로운 이들 금융 기업은 금융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의 규제 완화 덕분에, 은행에 비해 규제상 이점을 누린다. 이러한 요소들로 이들의 성장은 가속화, 금융의 모든 분야로 확장됐다.

자금 안정성을 찾는 과정에서 이 신흥 기업들은 보험에 눈을 돌려 안정적 자금원을 확보했다. 아폴로는 2022년 보험 부문과 합병, 지금은 미국 내 연금 상품의 최대 발행자가 됐다. 이들은 가계 뿐 아니라, 인텔 같은 블루칩 기업에 대출 해준다. 아폴로는 지난해에만 2000억 달러(약 275조 2200억 원)를 대출했다. 대형은행의 같은 기간 대출 증가액은 1200억 달러(약 165조 1320억 원)에 그쳤다. 

이들중, 트레이딩 기업들은 주식 선택과 시장 조성에서도 지배력을 보이고 있다. 2024년 제인스트리트는 모건스탠리만큼의 트레이딩 수익을 올렸다. 이들은 특히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등 첨단 기술 투자를 주도하며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과 아시아의 은행 중심 금융 시스템은 미국처럼 자본을 동원하지 못한다. 이는 해당 지역 산업을 뒤처지게 했고, 자금을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10년간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증권 규모는 두 배로 늘어 30조 달러(약 4경 1301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금융 구조는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다. 그 위험은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 구조는 새롭고 위기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스크를 수치화한 적도 없다. 이들의 급성장 뒤에는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모펀드, 헤지펀드, 자산운용사 등의 운용 방식은 기존 금융사와 달리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은 기존의 은행, 보험사, 전통적 펀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규모도 크고 복잡하다. 위기 상황에서 한 번도 시험받은 적이 없다.

게다가,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의 정부 부채는 놀랄 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무역 정책은 법적 충돌과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는 국가 제도들을 공격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재정위기, 무역갈등과 맞물려, 금융위험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미 재무부 발행 채권의 급증으로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기피할 경우, 금리 급등과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국제 협력 체계 이탈 움직임이 시장 혼란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장 큰 우려는 위기 대응 능력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비(非)은행 금융사’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정치적 합의가 어려울 전망이다. 한 월스트리트 관계자는 “은행 구제는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지만, 헤지펀드 구제는 국민의 분노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새로운 유동성 공급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비협조적 태도가 변수다. 만약 미국이 글로벌 달러 유동성 지원을 소홀히 할 경우, 신흥국을 중심으로 연쇄적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 위기가 오면, 미국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모두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트럼프 체제하에서는 위기 대응이 정치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08년에는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신속히 움직여, 은행을 구제하고 전 세계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도 있고, 자기 마음에 드는 금융인만 선택해서 도와줄 수도 있으며, 불쾌한 국가를 위협하거나 매번 소셜미디어에서 말을 바꿀 수도 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