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세계화에, 각국은 ‘통화주권’ 고심중”

FT, “금융시스템까지 위협, ‘디지털 유로’ 만으로는 대응 어려워… 화폐와의 1:1 대체가능성을 제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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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테더(USDT)·써클(USDC) 등 달러에 페그된 스테이블코인이 현재 추세대로라면, 글로벌 결제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통화주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없이 확산될 경우, 각국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머니마켓펀드(MMF)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그나치오 안젤로니 유럽중앙은행(ECB) 전 감독위원(현 보코니 대학교 및 라이프니츠 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최근 기고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유럽 경제의 독자성을 훼손할 수 있다. ECB가 준비 중인 디지털 유로는 제한된 금액만 유통되며, 상업적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면서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금융 시스템 간의 ‘완전한 호환’을 막고, 수수료 부과·지연 부담·한도 부여 등 방식으로 간접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FT는 “통화는 지난 5000년간 수많은 형태를 거쳐 왔지만, ‘가치의 척도’이자 ‘채무 이행 수단’이라는 본질은 동일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 화폐와 같지 않으며,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일반 소비자들의 결제수단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이며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원래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같은 고위험 자산을 거래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아침 커피값을 결제하는 수단이 될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6개월 이내에 가상화폐 관련 법안을 마련하도록 새로운 워킹그룹이 구성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화폐에 우호적이다. 이를 고려할 때, 이 법안은 ‘달러로 뒷받침된 합법적 스테이블코인의 세계적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공은 유럽으로 넘어왔다. 유로는 세계 2위의 국제 통화로서, 그 위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유럽의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 규제 당국의 과제는, 혁신과 실험을 장려하면서도 유로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FT는 유럽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제시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가장 단순한 대응으로, ‘현상 유지’를 하자는 것이다. 유럽에는 이미 ‘가상자산시장규제(MiCA·Markets in Crypto-Assets)’가 존재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명확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면, 통화주권은 유지될 수 있다. 또한 유로의 법정통화 지위는 유럽연합(EU) 조약에 의해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이 방관적 접근의 문제점은 달러화가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화폐 영역을 잠식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과 달리, 완전히 안정적(Stable)이지는 않다. 담보 자산의 가치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며, 특히 위기 시에는 그 폭이 커진다. 50여 년 전 등장한 MMF의 구조와 유사하다. 

FT에 따르면, 진정으로 안정적인 자산은 그러나 중앙은행 화폐뿐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MMF의 붕괴는 볼커가 금융 혁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만든 계기였다.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FT는 보고있다. 주요 통화의 모든 결제는 결국 중앙은행의 장부에서 정산되며, 이는 화폐에 대한 신뢰와 동일가치 보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유럽의 두 번째 선택지는, ECB의 직접 경쟁 참여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ECB가 ‘디지털 유로(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로 직접 경쟁하는 것이다. 현재 ECB는 모든 유럽 국민들이 소액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유로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 결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며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이보다 유망한 유럽의 마지막 선택지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부분 차단’ 전략이다. FT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과 전통적인 결제 시스템은 공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간에 완전히 상호 교환이 가능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현재 MiCA는 스테이블코인의 ‘1:1 전환’을 보장하고 있으나,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시스템 간에는 정산 지연, 수수료 부과, 이체 한도 부여 등의 마찰을 남겨, 대체 가능성을 제한해야 한다고 FT는 지적했다.

지금은 유럽이 대응할 차례지만, 이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문제다. 지난 5000년 동안 돈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지만, ‘가치 척도’와 ‘채무 이행 수단’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화폐와 동등하지 않으며, 규제 역시 동일하게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FT는 강조했다.

권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