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기술 혁신의 조언자로 각광받던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이 인공지능(AI)시대의 파고 앞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액센츄어의 경우, 최근 실적 부진으로 600억 달러(약 81조 3660억 원) 가량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컨설팅 기업은 신규 계약 건수도 급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액센츄어는 과거 기술 전환의 시기마다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며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컨설팅 회사. 하지만 AI 시대에는 기업들이 중개자 없이 바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와함께, AI 자체가 시스템을 자동 유지·업데이트함에 따라 컨설팅 수요는 급감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실적에 따르면, 액센츄어는 분기 수익과 영업이익이 다소 늘었지만, 핵심 사업인 신규 수주가 2분기 연속 하락했다. 특히 AI 관련 신규 계약은 작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AI 기술이 기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 ‘에이전트’ 형태로 발전하면서, 기업들은 더 이상 액센츄어와 같은 중개자 없이도 기술을 직접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는 기술을 만드는 자들의 것”이라며 “기술 중개자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술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액센츄어가 이제 변화의 외곽으로 밀려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액션츄어는 2001년 상장한 이래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총 370%의 수익률(배당 포함)을 기록했다. 이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물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쟁쟁한 금융기업들을 웃도는 성과였다. 2024년 2월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당시 액센츄어의 시가총액은 2500억 달러(약 338조 8250억 원)로, 두 대형 투자은행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사정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은 600억 달러(약 81조 3180억 원)의 가치를 지우며 액센츄어의 자만심도 함께 깎아내렸다. 6월 20일 분기 실적 발표 후 주가는 7%가 급락했다. 정부계약 매출(177억 달러·약 23조 9888억 1000만원)은 우려만큼 줄지 않았다. 그러나 신규 수주는 2분기 연속 감소했다. 단발성 컨설팅 프로젝트와 고객사의 기능을 대신 운영하는 ‘매니지드 서비스’ 부문은 모두 하락세였다. 분기 동안 1억 달러(약 1355억 5000만 원) 이상 계약을 체결한 고객 수도 32명에서 30명으로 줄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러한 침체는 일시적인 면도 있다. 글로벌 무역전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이 ‘혁신’보다는 생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깊다.
인터넷부터 클라우드까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법을 고객들에게 조언하며 성공해온 액센츄어는 이제 생성형 AI 시대에 자신이 그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AI가 기업 현장을 휩쓸며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과연 컨설턴트가 필요한가?
이 질문 앞에 선 인물은 2019년부터 CEO를 맡아온 줄리 스위트다. 그녀는 두 가지 논리를 내세운다. 첫째,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적응하는 데 과거 어느 기술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액센츄어는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비판했다.
물론 많은 글로벌 기업이 여전히 생성형 AI를 이해하지 못한다. 경영자들에게 클로드 소넷4(Claude Sonnet 4)와 챗지피티(ChatGPT) 오3(o3)의 차이를 물으면 멍하니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기업 S&P 글로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42%가 AI 프로젝트 대부분을 중단했으며, 이는 1년 전 17%보다 훨씬 높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얼마나 오래갈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액센츄어의 성공은 수많은 기술 기업들과의 협업에 기반해왔다. 복잡한 기술을 선정하고 적용하며 유지보수까지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협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된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액센츄어는 ‘코파일럿(Copilot) 비즈니스 전환 서비스’를 출시했다. 올해 5월에는 에스에이피(SAP)와 함께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돕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러나 겉보기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일부 기술 파트너들은 액센츄어를 ‘중간자’로 두는 걸 점점 기피하고 있다. AI가 제품에 통합돼 사용자 명령에 따라 자동으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이제는 컨설턴트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팔란티어 같은 신생 기업들은 자체 엔지니어를 고객사에 직접 파견한다. 한 기술 기업 CEO는 “이제 고객이 액센츄어에 돈 쓸 이유가 없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실제로 액센츄어가 체결한 AI 관련 계약 규모는 작년 분기당 2억 달러(약 2712억 4000만 원)
에서 최근 3개월간 1억 달러(약 1356억 2000만 원)로 줄었다. 컨설팅 업계를 분석하는 케네디 인텔리전스의 톰 로덴하우저는 “액센츄어에게 AI는 디지털 2.0이 아니다”라고 총평했다.
줄리 스위트 CEO의 주장과 달리, AI 시대는 액센츄어 같은 기술 지원자가 아니라 기술을 창조하는 쪽의 것일 수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2022년 11월 챗지피티 출시 이전까지 액센츄어의 주주 수익률은 200%에 달해 SAP나 아이비엠(IBM)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팔란티어의 가치는 불과 1년 만에 6배가 뛰어 3380억 달러(약 458조 2266억 원)에 달한다.
액센츄어도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IBM처럼 ‘딥테크’에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 개의 소규모 컨설팅 업체를 인수하는 데 몰두했다. 그중에는 50여 개의 광고·마케팅 대행사도 포함됐다. 이들 역시 메타나 구글의 AI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줄리 스위트 CEO는 ‘혁신 서비스’ 부서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이 부서는 액센츄어의 모든 서비스를 통합해 고객 요구를 원스톱으로 처리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사업부를 이끌어온 마니쉬 샤르마가 이 부서를 맡는다.
하지만 이는 결국 ‘액센츄어가 액센츄어식으로 일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AI 시대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액센츄어는 ‘더 나은 자문’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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