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올해만 435조원의 사상 최대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들 빅테크는 인재확보를 위해 한명의 계약금으로 한화 1400억원까지 제시하고 나섰다. 벤처캐피털들은 이들 대기업이 장악한 ‘범용 AI(General AI)’ 대신, 특정 목적에 특화된 AI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업계 재편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 경쟁이 다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메타·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2025년 한 해 동안 인공지능(AI) 인프라에만 3200억 달러(약 435조 328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이는 2년 전의 두 배 수준이다.
2023년 오픈에이아이(OpenAI)가 챗지피티(ChatGPT)를 공개하며 AI 전쟁의 포문을 연 이후, 테크기업들은 AI 투자의 속도를 요즘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인간의 두뇌 능력을 모방하거나 능가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을 위해,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를 쏟고있는 것이다.
기술 대기업들은 1억 달러(약 1359억 5000만 원)가 넘는 비용이 들고, 백만 가구 이상이 사용하는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와함께, AI 전문가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메타는 일부 AI 연구자에게 1억 달러가 넘는 사이닝보너스(signing bonus)를 제시하고 있다.
벤처 자본의 투자 역시 동반 급등했다. 산업 분석기관인 피치북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미국의 AI 기업 투자는 650억 달러(약 88조 3805억 원)로 전 분기 대비 33% 증가했다. 챗지피티 출시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550% 폭등했다. 벤처캐피털 ‘페이지 원 벤처스’의 투자자 크리스 니콜슨은 “모든 사람이 뒤처지는 것을 깊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현재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분야는 단연 데이터 센터.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은 올해 인프라 투자에 총 3200억 달러(약 435조 1040억 원)를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픈에이아이와 그 파트너들은 텍사스와 중동에 각각 약 600억 달러(약 81조 5820억 원) 규모의 AI 데이터 센터 단지를 조성 중이다. 메타는 루이지애나에 그보다 두 배 규모의 시설을 짓고 있다. 아마존은 인디애나에 대규모 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아마존의 파트너 기업인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이 1200에이커(약 485만㎡) 캠퍼스 내 30개 데이터 센터 전체를, 단 하나의 AI 시스템 훈련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마존 측은 “설사 기술 발전이 멈추더라도, 이 데이터 센터들은 AI 시스템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들여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를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 영입에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2013년 구글이 단 3명의 연구자 영입에 4400만 달러(약 598억 2240만 원)를 지불했을 당시, 실리콘밸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 금액은 ‘기본’에 불과하다.
메타는 최근 AI 훈련에 필요한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정리하는 스타트업 ‘스케일 AI(Scale AI)’에 143억 달러(약 19조 4522억 9000만 원)를 투자했다. 그 대가로 메타는 젊은 CEO인 알렉산더 왕을 영입했다. 그는 AI 업계에서 떠오르는 협상가로 평가받는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도 수억~수십억 달러(수천억~수조원)를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사실상 그들의 기술과 인재를 사들이고 있다. 제품이나 매출이 아닌, ‘사람’을 구매하는 것. 피치북의 신기술 분석가 디미트리 자벨린은 “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제품이나 매출이 아니라, 인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케일 AI 투자는 메타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추진 중인 ‘초지능(superintelligence)’ AI 연구소 설립 전략의 일환이다. 초지능이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가상의 AI를 말한다. 저커버그는 일부 연구자에게 개인당 1억 달러(약 1360억 3000만 원)에 달하는 보상 패키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오픈에이아이 연구자에게만 45건이 넘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실리콘밸리 거인 중 하나인 애플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AI 전쟁이 격화되면서 애플도 인재확보에 나섰다. 내부적으로는 AI 스타트업인 ‘퍼플렉시티’의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는 140억 달러(약 19조 400억 원)로 평가된다.
벤처캐피털들도 투자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제는 오픈에이아이와 구글 같은 대기업이 장악한 ‘범용 AI’ 대신, 특정 목적에 특화된 AI에 집중하는 추세다. 예컨대 면접 특화 AI를 개발하는 리본(Ribbon)이나, 의사 방문 내용을 기록·요약하는 AI를 만드는 엘레오스 헬스(Eleos Health) 등이 그 사례다. 기술 기업들은 설사 AI 기술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지금 이뤄지고 있는 투자는 결국 보상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페이지 원 벤처스의 투자자 니콜슨은 NYT에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려다 카리브해에 도착했다.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결국 아주 가치 있는 곳에 도달했지 않나”.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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