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길로 질주하고 있다. AI에 대해 미국은 기술적 선두를 지키기 위한 범용 인공지능(AGI)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반면, 중국은 현실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농업·의료·산업으로의 접목에 주력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AGI가 조기에 현실화되면 미국이 앞설 수밖에 없지만, 장기전이 될 경우 중국식 실용 전략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AGI’ 확보에 막대한 자금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중이다. 구글, 메타, 오픈에이아이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은 인재와 데이터센터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 의회 일각에서는 “AI 맨해튼 프로젝트”까지 거론하고 있다.
중국은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시진핑 주석은 농업·의료·산업 등 실생활에 즉시 적용 가능한 ‘실용형 AI’ 개발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미 고등학교 입시 채점, 기상예보, 경찰 출동 결정, 농민 작물 지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AI플러스(+)’ 전략을 앞세워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모델을 적극 장려, 기업들이 빠르게 제품화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해외 시장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WSJ에 따르면, AI 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베이징이 AGI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AI에 대해 미국과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고 WSJ는 전망했다.
미국이 AG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약 수조원)를 쏟아붓는 동안, 중국은 실용적이고 저비용의 AI 응용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농업, 의료 등 여러 분야에 AI를 통합하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 AI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 제재로 인해 중국은 첨단 AI 모델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은 AI 분야의 다음 진화적 도약을 위해 수 기가와트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 도약이 글로벌 질서를 바꿀 힘을 가진 원자폭탄에 비견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중국은 다른 종류의 경주를 하고 있다.
오픈에이아이의 챗지피티가 출시된 지 거의 3년이 지난 지금, 실리콘밸리는 인간의 사고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AI의 성배’ AGI를 추구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AGI 열광자들은 이것이 미국에 △막대한 군사적 이점을 제공하고, △암을 치료하고, △기후 변화를 해결하며, △회계 및 고객 서비스 같은 일상적인 작업을 수행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최근 AGI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중국 기술 산업에 대해 “응용 프로그램에 강력히 집중”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중국의 효율성을 높이고 쉽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저비용의 도구를 개발하자는 것.
이러한 상반된 비전은 상당한 이해관계가 걸린 정면 대결을 의미한다고 WSJ는 내다봤다. 만약 중국의 선택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21세기 가장 중요한 기술에서 미국에 훨씬 뒤처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AGI가 여전히 먼 미래의 꿈으로 남아 있다면, 중국은 경쟁국인 미국을 앞지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 중국은 현재 형태의 AI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 응용 프로그램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챗지피티의 기반이 되는 모델과 유사한 국내 AI 모델이 정부의 승인을 받아 사용되고 있다고 국영 언론과 정부 보고서들은 전했다. 사용 사례는 △고등학교 입학시험 채점, △일기 예보 개선, △경찰 출동, △농부들의 작물 순환 자문 등.
중국판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불리는 칭화대는 AI 기반 병원을 개원, 가상 동료들이 질병에 대한 최신 데이터를 제공하며 의사들을 보조하게 할 예정이다. 지능형 로봇은 자동차 ‘다크 팩토리(dark factories. 사람의 개입 없이 로봇, AI,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로 24시간 완전 자동화된 공장)’를 운영하고 직물에 흠이 있는지 검사하는 데 투입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절 중국과의 기술 경쟁을 전문으로 다루던 전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줄리안 게워츠는 “중국인들은 매우 영향력 있는 AI 응용 프로그램을 미래에 대해 이론화할 대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기술 기업들도 현재 AI를 활용한 실용적인 응용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구글은 최신 픽셀 스마트폰에 실시간 번역 기능을 탑재했다. 미국 컨설팅 회사들은 AI 에이전트를 사용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고객을 위한 인터뷰 요약을 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이를 활용해 신약 개발과 음식 배달을 개선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을 거의 자율에 맡기는 미국과 달리, 중국 정부는 그들의 비전 뒤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앙 정부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84억 달러(약 11조 6911억 2000만 원) 규모의 AI 투자 펀드를 공개했다. 이후 지방 정부와 국영 은행들도 자체적인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여러 도시들은 ‘AI+’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AI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국무원은 이 캠페인에 대한 더 넓은 야망을 최근 제시했다. 2030년까지 과학기술 연구, 산업 발전 및 기타 분야에 AI를 통합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 중국의 경제 발전을 “포괄적으로 강화”할 것을 촉구한 것.
중국은 또한 사용자들이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수정할 수 있는 오픈소스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구축하는 데 비용을 절감하고 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중국 AI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가 이러한 추세를 따르도록 흔들고 있다.
AGI의 꿈
이러한 강조점은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가 과학을 혁신하고, 완전히 새로운 탐구 분야를 개척하며, 미군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 많은 미국 주요 기술 기업들의 야망과는 다소 다르다.
일부 기술 업계 관계자들은 AGI가 이르면 2027년에 도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메타, 구글, 오픈에이아이 같은 회사들은 선두를 차지하고, 필요한 인재, 데이터 센터,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의회 위원회는 미국이 이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AGI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픈AI가 8월에 야심 차게 출시한 ‘지피티-5’는, 처음에는 AGI로 가는 주요 디딤돌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을 실망시켰다. 오픈에아이아의 샘 알트만은 순조롭지 못한 출시를 인정하고, 이후 AGI 과대 광고를 자제하고 AI 투자 거품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다른 실리콘밸리의 거물들도 흔들리기 시작하며, 중국의 접근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와 기술 분석가 셀리나 쉬는 뉴욕타임즈의 최근 칼럼에서 “AGI가 얼마나 빨리 달성될지는 불확실하다”면서 “이 목표에만 집착하면, 우리나라는 인간을 능가할 만큼 강력한 AI를 만드는 데 훨씬 덜 신경 쓰고, 지금 가진 기술을 사용하는 데 훨씬 더 집중하는 중국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썼다.
실용적 접근법
AI의 더 실용적인 사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열정은 시 주석이 베이징 남쪽 두 시간 거리에 새로 건설한 꿈의 도시인 슝안(Xiong’an)에서 엿볼 수 있다고 WSJ는 강조했다. 지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이 도시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기술을 활용해 지역 농부들에게 △작물 선택, △심기, △해충 방제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농업용 AI 모델을 출시했다고 발표했다. 이 도시의 기상 서비스는 딥시크를 사용해 일기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딥시크는 또한 지역 경찰이 사건 보고서를 분석하고 긴급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하루에 전국적으로 수십만 건의 전화를 처리하는 정부 질의 응답 핫라인인 12345의 슝안 지점은 딥시크를 사용, 문의를 분류하고 전달하고 있다.
중국 정부 투자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첨단 모델 훈련을 위해 미국에서 건설되는 거대한 시설과 달리, 중국의 데이터 센터는 대체로 규모가 더 작다.
베이징은 AI에서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크다. 미국의 무역 제재, 특히 첨단 반도체에 대한 제재는 중국 AI 기업들이 가장 진보된 모델 훈련을 확장하는 데 있어 미국 거대 기업들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 교수이자 중국 AI에 초점을 맞춘 뉴스레터인 차이나이(ChinAI)의 저자 제프리 딩은 “규모를 추구하는 데 대한 투자 수익률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선택은 더욱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에는 기술 선도국인 미국이 탐색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당신은 빠른 추격자가 되거나 구현을 최적화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딥시크나 알리바바를 포함한 일부 중국 기업들은 AGI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AGI에 대한 일부 야망을 억제하려 할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컨설팅 회사 트리비움 차이나의 기술 정책 연구 책임자인 켄드라 셰퍼는 “시 주석이 어느 시점에 AGI를 더욱 공격적으로 추구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고하는 기계가 공산당의 안정성에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신중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중국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 회피적인 정부 중 하나”라고 밝혔다.
닷컴 버블 붕괴와 수년간의 개발을 거쳐 글로벌 경제를 재편할 수 있었던 인터넷처럼, AI에서도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제프리 딩 교수는 밝혔다. 그는 “엘리트 대학을 넘어 기술 지식을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교육 시스템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 미국은 중국보다 중요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우위를 유지하도록 신중을 기한다면, 미국은 결국 중국의 방식에서 중국을 이길 좋은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딩은 WSJ에 말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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