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고공행진 이면에, 막대한 규모의 ‘부실회계’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AI 칩의 내용연수를 6년으로 지나치게 길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연수를 2~3년으로 바로잡으면, 5대 빅테크 기업의 시가총액에 최대 4조 달러(약 5580조 원)에 이르는 평가 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AI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수조원)’는 2022년에나 통하던 이야기다. 3년 전 챗지피티가 AI 붐을 촉발했을 때만 해도, 수십억달러는 큰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수조 달러’(수천억원)가 화두다.
AI의 빛나는 성장 엔진인 애저(Azure) 클라우드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최근 4조 달러(약 5580조 원) 고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도 AI 변신 덕에 이제 3조 달러(약 4183.8조 원) 회사가 됐다. 아마존도, 주가가 좋은 날을 잡으면 이에 근접한다.
이제 AI 기업으로 변신한 메타의 시총은 2조 달러(약 2789.2조 원) 선에서 굳어졌다. 최근엔 오라클이 AI 클라우드에서 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에 도전하며 1조 달러(약 1394.6조원)
고지를 향해 돌진했다. 올 연말까지 주식 매각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AI와, 경쟁사인 △앤스로픽, △엑스AI 등 세 회사의 기업가치 합계도 이 정도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AI 관련 매출과 지출 규모도 이제는 ‘13자리 숫자’로 불린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지출은 1조 달러에 살짝 못 미쳤다. 2026년에는 2조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 전망이다. 2024~2026년 사이 상장된 ‘AI 빅5’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1조 달러를 넘길 것으로 보이며, 그중 대부분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쓰인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으로 흘러간다. 이 두 회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6조 달러(약 8364.6조 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매출 합계만 해도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0이 줄줄이 달린 수치는 보통 주요20개국(G20)의 공식 통계에서나 볼 법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기업 세계에서 이런 규모는 현기증이 날 정도. 게다가, AI 거인들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마치, 블랙홀을 들여다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기업들이 분기보고 대신 반기보고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상황을 더 깜깜하게 만들 수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맑은 정신과 강력한 손전등 없이는 버티기 힘든 이유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다행히 몇몇 전문가들은 이미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해답에 따라 AI 챔피언들의 기업가치가 수 조 달러(수 천억원) 단위로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질문은 이들 기술 대기업의 자산, 특히 데이터센터에 설치 중인 고급 AI 칩의 수명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AI 칩을 2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새 모델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블랙웰(Blackwell) 칩이 대량 출하되면, 이전 세대인 호퍼(Hopper) 칩은 공짜로 줘도 안 받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물론 그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없었다. 그 말대로라면, 엔비디아 고가 제품의 유효 수명이 고작 12개월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 실제로 그의 최대 고객사들은 최근 서버의 감가상각 기간을 늘리며, 회계상 비용을 줄이고 있다.
감가상각 기간을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4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알파벳은 2023년에, △아마존·오라클은 2024년에, 각각 5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메타 역시 2025년 1월, 5년에서 5.5년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같은 1월, △아마존은 일부 장비에 대해 다시 5년으로 되돌렸다. 이는 감가상각비가 커졌기 때문이다. 2025년 영업이익의 1%에 해당하는 7억 달러(약 9753.1억 원)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빠르게 진화하는 칩 기술을 감안하면, 이런 낙관은 위험하다. 아마존의 AI 경쟁사들이 여전히 늘어난 감가상각 기간을 고수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천적(Pollyannaish)’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베테랑 공매도 투자자인 짐 채노스는 7월 “메타의 AI 칩이 실제로 2~3년밖에 안 간다면, 메타의 ‘이익’ 대부분은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도 알파벳·아마존·메타를 분석한 결과, 감가상각 비용이 늘면 이들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이 5~10%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 논리를 AI 빅5 전체에 적용하면, 순이익에 미치는 잠재적 충격은 막대하다. 이들 기업은 컴퓨팅 인프라의 순장부가치를 직접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간보고서에 공시된 총 장부가치에 토지(감가상각 제외)를 뺀 전체 설비·장비의 순 장부가치 비율을 곱해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전 세계 AI 설비투자에서 서버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게, 이 중 절반이 서버라고 가정하자. 만약 모든 서버의 수명이 현재 기업들이 가정하는 기간이 아닌 3년으로 단축된다면, 5대 기업의 연간 세전이익은 작년 대비 약 8%에 해당하는 260억 달러(약 36조 2128억 원)가 감소한다.
현 시가총액 대비 세전이익 비율을 적용하면, 이는 이들 기업의 총 시가총액에서 7800억 달러(약 1086조 3840억 원)가 날아가는 셈이다. 서버의 감가상각 기간을 3년이 아닌 2년으로 계산하면 타격은 1.6조 달러(약 2228조 8000억 원)로 커진다. 만약 젠슨 황의 농담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1년으로 잡으면, 충격은 무려 4조 달러(약 5580조 원), 즉 이들 기업 총가치의 1/3 수준에 달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AI 빅5’의 서버가 3년, 하물며 1년 만에 쓸모없게 되진 않는다. 많은 서버는 여전히 비(非)AI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일부 AI 작업도 구형 프로세서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AI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수록, 이들이 구매하는 고급 장비의 조기 노후화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엔비디아의 최대 3대 고객(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로 추정)은 각각 150억 달러(약 20조 8950억 원) 규모의 칩을 구매했다. 메타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알파벳과 아마존은 브로드컴·마벨 등에서 자체 설계 기반 맞춤형 칩을 사들이며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썼다.
문제는 서버 자산 100억 달러(약 13조 9300억 원)어치를 1년 감가상각으로 전환하면,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당순이익이 7%, 아마존과 메타는 12%씩 감소한다는 점이다. 오라클처럼, 상대적으로 재무 규모가 작은 회사는 자산 10억 달러(약 1조 3930억 원)당 6%가 줄어든다. AI의 ‘수조 달러(수천조 원)의 광휘’가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그 정확한 규모가 얼마인지는 결국 회계사에게 물어볼 일이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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