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재무 보고서 작성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광범위하게 도입하면서, 수십 년간 인간의 영역이었던 공시 업무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재무 보고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성 극대화’라는 이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보고 내용의 투명성과 투자자와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은 재무보고서, 특히 숫자가 적은 서술 부분의 초안과 분개장 작성 등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 AI 도입으로 온세미컨덕터는 장부 마감부터 보고까지 걸리는 시간을 10일에서 8일로 단축했고, 내년에는 6일을 목표로 하는 등 재무 보고 주기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휼렛패커드도 재무제표 초안 작성을 AI에 맡길 계획이다.
재무 임원들은, △AI가 생성한 초안을 인간이 검토하는 ‘루프 안(in the loop)’에서, 점차 △AI가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인간은 예외만 확인하는 ‘루프 위(on the loop)’로 전환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AI의 데이터 집계 및 반영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WSJ은 밝혔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목표로 재무 보고서 초안 작성에 생성형 AI를 최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뢰와 투명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WSJ에 따르면,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인 온세미컨덕터(ON Semiconductor)는 AI를 사용, 장부 마감부터 결과 보고까지 걸리는 시간을 10일에서 8일로 단축했다. 내년에는 평균 6일로 줄일 계획이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재무 임원의 28%가 대외 보고에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다. 16%는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재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데 생성형 AI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고 WSJ은 밝혔다. 하지만, 이는 투자자와 규제 당국과의 소통에서 경영진의 노력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온세미컨덕터의 최고 재무책임자(CFO) 태드 트렌트는 지난 한 해 동안 특히 숫자가 많지 않은 섹션에서 재무제표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AI 사용을 늘렸다고 말했다. 트렌트 CFO는 AI가 경영진의 토론 및 분석 섹션을 작성하는 데 “점점 더 나아지고 있으며” 회사의 규제보고 담당자의 편집 작업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회사가 특정 섹션에서 ‘한 단락’을 작성하도록 AI에 요청했다. 하지만, 트렌트 CFO는 “이제는 ‘섹션 전체를 작성해 줘’라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랫동안 인간만이 전적으로 처리했던 대외적인 업무에 대해, 재무 임원들이 AI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최근의 신호라고 WSJ은 밝혔다. 기업들은 이미 애널리스트들이 실적 발표에서 질문할 수 있는 내용에 대비하기 위해 AI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재무보고서는 AI에게 중요한 시험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모든 미국 상장사가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경영진 토론 및 분석을 포함하는 보고서를 분기별 및 연간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투자자들은 이 보고서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며,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진술은 민사 및 형사상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는 재무 보고서의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숫자 집계 작업에도 스며들고 있다. 온세미컨덕터의 트렌트 CFO는 특히, 수익 및 비용에 대한 발생액과 같은 분개장(journal entry) 정보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는 결국 대차대조표에 합산된다는 것.
재무 보고에서 AI의 도움 덕분에 이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본사를 둔 회사는 장부 마감부터 분기별 결과 보고까지 걸리는 시간을 약 10일에서 8일로 단축했다. 내년에는 이를 6일로 줄일 계획이다. 그는 "과거에 우리가 했던 것보다 전체 재무 보고 주기 전반에 걸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인 휼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는 실적 발표 준비에 자사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사용해 왔다. 빠르면 1월에 마감되는 분기에 공식적으로 재무제표의 첫 초안을 작성하는 데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CFO인 마리 마이어스가 말했다.
마이어스 CFO는 언젠가는 회사의 미국 SEC 보고서 중 재무 및 비재무 부문 모두 AI가 작성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작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어스 CFO는 AI의 데이터 반영 및 집계 능력을 언급하며 “현재 실적에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그것이 잘 반영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그것은 AI가 잘한다. 인간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텍사스주 스프링에 본사를 둔 이 기업 기술 회사는 현재 공동 개발한 AI 플랫폼을 사용해 투자자 관계 팀이 실적 발표일에 애널리스트가 던질 질문을 예측한다. 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답변을 어조(tone)와 전달(delivery) 측면에서 분석하도록 돕고 있다고 마이어스 CFO는 말했다.
SEC 보고서에서 회사의 재무 상태와 성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회계에서의 AI 역할은 현재는 최소한이라고 WSJ는 밝혔다. 하지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업 자문가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특정 회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개장 계산을 AI에 요청하기도 한다. 가트너의 수석 이사 애널리스트인 아쉬 메타는, 프랑스 회계 규칙을 준수하는 판매 준비금 설정과 같은 경우를 언급했다. 그런 다음 재무팀은 제안이 효과가 있을지 확인하지만, AI가 일반적으로 장부에 회계 항목을 직접 게시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로서는 사람들이 AI에 대해 “루프 안에 있다”고 한다. 즉 AI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메타 애널리스트는 “AI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루프 위에 있는’ 인간이라는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있다”며 “여기서 인간은 예외를 확인하거나 특정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만 개입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것이 일반화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영진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국제금융경영자(Financial Executives International) 행사에서 실시된 즉석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석자의 28%가 대외 보고서 준비에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16%는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57%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기술에 대해 더 큰 자신감을 표명한다. 연초에 골드만삭스 CEO인 데이비드 솔로몬은 회사가 상장 전에 SEC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95%가 AI에 의해 몇 분 만에 완료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재무 보고서 작성에 AI를 위한 새로운 작업이 발견되고 있지만, 미묘한 단점도 있을 수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한 가지는, 로봇과 같은 목소리가 기업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의 어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실제로 히브리대학교 경영대학원 회계학과장인 케렌 바르-하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영진과 투자자 간의 신뢰가 침식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르-하바 학과장은 “공개 내용이 틀에 박히거나 감정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영진의 공개가 그들에게 실제적인 것을 말해준다고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이라며 “위험은 AI가 비판적 사고와 정직한 경영진의 목소리를 대체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새로운 용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분기별 보고를 폐지하고 6개월마다 보고하면 기업의 시간과 비용이 절약될 것이라고 요구한 시점에 나온다. 지난달 SEC 의장인 폴 앳킨스는 그렇게 하기 위한 규칙 변경 제안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위원회는 아직 이를 추진하지는 않았다.
콜롬비아 대학교 법학 교수인 존 커피는 분기별 보고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재무 인력을 AI로 대체하도록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재무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 법인들도 해당 업무에서 AI 사용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커피 교수는 “AI는 완벽하지 않으며, 적어도 초기에는 세계적 4대 회계법인만큼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경고했다.
상장 기업은 AI 사용이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때 이를 공개해야 하지만, AI가 재무보고서 작성에 어떻게 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AI 스타트업인 라이터의 금융 서비스 책임자 딜쇼다 예르가쉐바는 “AI가 시간을 절약해 준다면, 기업들이 향후 몇 년 동안 다양한 유형의 주주를 위한 맞춤형 재무 보고서를 발행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르가쉐바는 “주주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100개 또는 1000개의 다른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하지만 AI를 사용하면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방법이 미래에는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WSJ은 전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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