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인한 화이트칼라 대량 실업과 주가 폭락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최근 미국에서 발표돼,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보고서는 에스앤피(S&P)500 지수 등 주가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 보고서의 여파로 아이비엠(IBM) 등 테크 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하는 한편, 증시 자금이 필수 소비재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가 지난달 내놓은 ‘2028 글로벌 인텔리전스 위기’라는 제목의 80쪽 분량의 보고서가 최근 월스트리트를 뒤흔들고 있다. 이 보고서는 2년 뒤 미국 실업률이 10%를 넘고, S&P500이 40% 가까이 폭락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AI가 화이트칼라를 대체하면서 소비 기반이 붕괴하고, 그 충격이 모기지와 사모신용 시장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상위 10%의 소득자는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계층이 실직하거나 임금이 반 토막 나면, 소비 위축은 실업률 수치보다 훨씬 큰 충격을 낳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소프트웨어 기업, 결제회사, 중개 플랫폼은 AI 자동화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27년 초, AI 에이전트는 소비의 기본값이 된다고 이 보고서는 전제했다. AI 에이전트들은 24시간 내내 최저가 보험을 찾고, 매초 단위로 구독 서비스를 재협상하며, 카드 수수료가 없는 결제 수단(스테이블코인 등)을 찾아내게 된다.
이 결과, 미국판 배달의 민족인 도어대시 등의 마진은 0에 수렴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배달 앱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고연봉 화이트칼라 고객층이 사라진다. AI는 수수료 체계를 우회하면서, 신용카드사의 수익 모델을 파괴한다. 정보 비대칭으로 먹고살던 부동산 등 중개인과 변호사들의 가치는 순식간에 증발하게 된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 보고서에 대해 “경제 논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시트리니 리서치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에서는 경제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지만, 소비는 급락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이런 논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 금융가 데이비드 리카도와 성직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토머스 맬서스가 ‘총체적 공급 과잉’의 가능성을 두고 논쟁한 적이 있다는 것.
당시 곡물 가격은 떨어지고 산업 생산은 급증했지만, 눈에 띄게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구매력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즉, “모든 것이 한꺼번에 너무 많아진” 상황이었다.
리카도는 이런 현상을 부정했다. 이는 세이의 법칙(Say’s Law), 즉 “생산이 스스로 수요를 만든다”는 것을 위배하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농부는 자신이 생산한 식량을 팔아 직물(옷)을 산다. 실물 생산이 곧 구매수단이다. 따라서 ‘부분적 과잉’만 가능하다는 것.
특정 산업(예컨대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과잉생산을 일으켜 가격이 폭락하고 일자리가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다른 부문에서 구매가 늘어나게 된다.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얻는다. 그것이 경제적 변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반적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후대 경제학자들은 “돈”이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제품을 만든 뒤 팔고 나서, 그 현금을 그냥 보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총체적 공급과잉’은 가능하다.
만약 이번에도 AI 기업주들이 봇(bot)이 벌어들인 현금을 단지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것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대신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실업률은 오르겠지만 국내 총생산(GDP)은 감소하게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오히려 지금의 AI 기업들은 현금을 더 많은 데이터센터 건설에 재투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 뚜렷한 생산성 향상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는 “AI 기업의 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 채권매입, 재정지원 등 수요 침체를 완화할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 따라서 AI 확산이 소비가 없는 경제를 낳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한편, NYT는 “비록 많은 분석가와 경제학자들이 시트리니 보고서의 결론에 의문을 표하고 있지만, 이 보고서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며 “이 보고서가 경제에 대한 AI의 위협을 경고했던 이전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연준(Fed) 이사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이 보고서의 결론을 일축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AI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대체해 실업률이 급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AI는 도구일 뿐, 인간인 우리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NYT에 강조했다.
도이치방크의 전략가 짐 리드는 “이 보고서가 결국 틀릴 것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확실한 증거보다는 서사와 감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라며 “다만 실체에 대비해, 분위기(vibes)의 비중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꼬집었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