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등 주요 국가들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현금과 기타 준비자산으로 1대1의 뒷받침이 되는 디지털 화폐.
스테이블코인은 하지만, 실제 효용에 비해 과도한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나 △은행의 토큰화 예금 등 다른 디지털 화폐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뛰어드는 기업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현재 상당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의 이점은 제한적인 반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여러 가지라고 FT는 설명하고 있다.
영국 등 중앙은행은 최근 이런 형태의 화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돈이 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마치 나무에서 돈이 자라나는 것처럼 곳곳에서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FT는 꼬집었다.
최근에는 ‘오픈 유에스디(Open USD)’가 야심 차게 등장했다. 이 스테이블코인을 뒷받침하는 컨소시엄에는 △비자, △마스터카드, △코인베이스, △뉴욕멜론은행(BNY) 등이 참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규제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Bank of England)도 최근 이런 형태의 디지털화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FT에 따르면,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이 제공하는 혜택은 제한적이다. 반면, 문제점은 여러 가지를 안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화폐 거래의 입출구’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가상화폐 거래로 들어가거나 빠져나오는 ‘온·오프 램프(on-off ramp)’역할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비트코인이나 다른 디지털 토큰에 투자할 기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돈을 스테이블코인에 잠시 보관하는 것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서와 별도로,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저렴하며 △안전한 국제 결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FT는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는 이 주장이 맞다.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는 토큰은 세계 어느 곳으로든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비용도 매우 낮다.
느린 국제송금이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FT에 따르면,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기 이전의 국제송금이 느렸던 이유는 기술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이보다, 은행들이 자금세탁을 찾아내기 위해 실시하는 각종 확인과 통제 절차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규제를 받는 거래소가 운영하는 스테이블코인 지갑 역시 똑같은 통제를 받는다.
물론 모든 지갑이 이런 통제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은 정당한 우려다. 또 이용자들은 ‘자체 보관형(self-hosted) 지갑’에 자금을 보관할 수도 있다. 이 지갑은 감시 대상이 아니다.
추적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가상화폐의 흐름을 추적하기 어렵게 만드는 ‘믹서(mixer)’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믹서는 여러 거래를 뒤섞어 자금의 출처와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어렵게 만드는 서비스.
스테이블코인, 범죄에 이용될 수도
이 때문에 디지털 화폐는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FT는 밝혔다. 온라인 범죄를 추적하는 업체 티알엠 랩스(TRM Labs)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적인 주체들이 스테이블코인 지갑을 통해 받은 금액은 1410억달러(약 188조 6862억 원)에 달했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불법 거래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교를 위해 보면, 맥킨지와 아르테미스 애널리틱스는 지난해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에 사용된 전체 규모를 약 3900억달러(약 521조 8200억 원)로 추산하고 있다.
현금 역시 추적하기 어려운 수단이다. 그런데도, 굳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수행할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낼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느냐고 FT는 반문했다.
다만 이 부분은 최신 TRM 자료를 보면 조금 더 복잡하다. TRM은 2025년 전체 불법 가상화폐 유입을 1580억달러(약 211조 4356억 원)로 추정했다. 그러면서도, 전체 온체인 거래에서 불법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오히려 낮아졌다고 분석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범죄에 이용되는 규모는 상당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전체가 범죄에 사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항상 ‘스테이블’하지는 않아
스테이블코인의 두 번째 문제는 이름과 달리 일부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그다지 스테이블(안정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규제를 받고 있으며, 안전한 실물자산으로 뒷받침되는 서클(Circle)의 유에스디씨(USDC)조차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붕괴했을 당시 1달러(약 1338.3 원)당 86센트(약 1151.2 원) 수준까지 거래된 적이 있다.
법정화폐를 떠받치는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안전장치가 스테이블코인에는 없다. 첫째는 예금자보호제도, 둘째는 금융위기 때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last resort lender) 기능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발행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중앙은행이나 예금보험제도가 자동으로 투자자를 구제해 주는 구조가 아니다. 은행 예금과는 다르다.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해상충’
FT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중심에는 ‘인센티브 구조의 문제’가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자신이 발행한 토큰을 뒷받침하는 준비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투자수익을 통해 돈을 번다. 따라서 발행사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유리하다.
결국 발행사는 스테이블코인의 사용 범위를 계속 확대하도록 유도할 경제적 동기를 갖는다. 이는 전통적인 화폐를 관리하는 중앙은행과는 다른 구조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나 유럽연합 등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도 자국 통화가, 달러보다 국제적으로 더 널리 사용되기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통화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반면,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자신이 발행한 토큰의 규모와 △준비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확대할 유인을 갖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CBDC가 더 나은 대안일 수 있어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더 나은 방향일 수 있다. CBDC는 △중앙은행, △상업은행, △국민을 연결하는 ‘디지털 결제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 결정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CBDC를 사실상 금지했다. 더 나은 해결책이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더 많은 화제를 만들어내는 다른 수단에 밀려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라고 FT는 밝혔다.
권선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