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은 주식시장이 항상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주식시장은 효율적인가? 현실에서는 게임스탑 같은 밈 주식 열풍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급등락이 나타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반박하는 ‘비탄력적 시장 가설’을 역설하며, “주가는 기업의 미래 이익 전망이 아니라, 자본의 유입·유출 흐름 자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최근 지적했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 기업, 투자자 모두 주가 상승을 경기 호황의 신호로 단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 단 1달러(약 1539.5 원)의 투자 유입이 시장 전체 가치를 3~8달러(약 4614.6~1만 2305.6 원)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 실적을 분석하면 주가를 설명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어느 상장지수펀드(ETF)로 돈이 들어오고, 어느 연금이 어떤 자산을 사는지까지 분석해야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 주식시장의 경우, 국민연금·퇴직연금 등 연기금이 고정 비율로 주식을 매매하고 있다. 이들의 리밸런싱은 시장 가격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할 수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AI)·반도체 주식 폭등은 자금 유입 그 자체에 의해 왜곡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오르는 주식’에 무작정 올라타는 전략은 결국 투자자들에게 치명적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효율적 시장 가설의 공식적 정의는 투자자들이 집합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즉각적이고 완벽하게 자산 가격에 반영한다는 것. 이를 인용하는 사람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시장이 기업 이익 같은 펀더멘털에 대한 최선의 예측을 제공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가격은 항상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이상적인 모습은 유난히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을 혼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밈 주식을 사들여 가격을 폭등시킨다. 2020년 이런 방식으로 주목받은 적자 게임 소매점 ‘게임스탑’의 주가는 아직도 당시보다 20배 이상 높다. 이는 AI 혁명 최대 수혜주인 엔비디아의 수익률과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동료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신주를 발행하고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그들 스스로 강세장이 정점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이코노미스트는 해석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신나게 돈을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거래 현장을 누빈 금융 경제학자들은 반세기 전부터, 시장이 새로운 정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주장했다. 2013년 노벨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는 논문을 통해 1979년에는 채권 수익률에 대해, 1981년에는 주가에 대해 이를 입증했다는 것.
그가 연구한 약 100년 치 데이터에서, 주가는 대공황급의 불황을 가정하더라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급락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는 투자자들이 배당금에 대한 냉철한 예측만을 근거로 주식 가격을 정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쉴러의 지적 후계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일조했다. 현재 연구자들과 학문적 성향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론은 ‘비탄력적 시장 가설(Inelastic Markets Hypothesis)’이다. 하버드대 자비에 가바이스와 시카고대 랄프 코이엔이 제창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주가가 기업 배당금(또는 이익)에 대한 기대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대신, 자본 흐름(capital flows)에 의해 크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추산에 따르면, 누군가 신규 현금 1달러(약 1539.5 원)어치 주식을 매입하면 주식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이 3~8달러(약 4614.6~ 1만 2305.6 원) 상승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유형의 투자자를 상상해보자.
첫째는 추세 추종형(return-chaser). 주가가 오를 때 더 사고, 내릴 때 파는 투자자다(개인 투자자나 추세 추종 헤지펀드가 해당한다). 둘째는 고정 배분형. 주식 60%, 채권 40% 같은 고정 자산 배분 비율을 유지하는 투자자다(연기금 등이다). 셋째는 가치 투자자. 폭락 후 극도로 저렴해진 주식에만 관심 있는 투자자다(워런 버핏을 생각하면 된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이 단순화된 조합은 실제 시장을 지배하는 집단들과 꽤 닮아있다. 중요한 것은, 왜곡을 바로잡고 펀더멘털에 맞게 자산을 재평가해야 할 ‘차익거래자’들이 극소수이며 엄격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강세장에서 주식을 사고 싶은 은퇴 예비 저축자를 상상해보자. 그는 추세 추종형 투자자에게서는 살 수 없다. 그들도 더 사고 싶기 때문이다. 고정 배분형 투자자는 가격이 오를 때만 팔 수 있다. 60/40 비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 투자자 역시 주가가 더 비싸질수록, 즉 그들의 눈에 더 매력 없어 보일수록 팔려 할 것이다.
결국, 이 ‘자본 흐름’은 미래 이익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과 무관하게 주가를 끌어올린다. 새로운 돈이 시장에 들어오면, 누구도 쉽게 공급을 늘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주가는 상승한다. 미래의 기업이익 전망과는 무관하다.
트레이딩 데스크를 누비는 이 전문가들이 효율적 시장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들에게 짜증을 느낀다면, 그들 경제학자 역시 이 설명에 비웃음을 보낼 수 있다. 결국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도록 가격이 오른다”는 말처럼 들리면서도, 왜 수요가 애초에 증가했는지는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백이 오히려 이 이론의 강점일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월급날마다 주식을 사는 평범한 저축자들은 대체로, 기업 이익에 대한 예측을 근거로 주식을 사지는 않는다는 것. 목표 수익률을 향해 달려야 하고, 딱히 더 나은 선택지도 없는 기관 투자자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동은 주가를 끌어올린다. 이것이 미래 승자를 예측할 것이라고 베팅하는 것은 “투자금을 날리기 딱 좋은 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했다.
권선무 기자